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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보복이 전기차, 수소차 등 차세대 성장 동력을 겨냥한 2차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역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현대차의 수소자동차에 들어가는 수소탱크는 모두 일본 도레이가 공급하는 탄소섬유로 만들어지고, SK이노베이션·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용 핵심 소재도 일본 의존도가 높아, 일본이 손을 데기 시작하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일본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제외 조치 가능성에 따른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일본 경제 보복이 반도체에 이어 완성차, 자동차 배터리 등으로 확산될 조짐이 일자 자동차 업계 전반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특히 미래차 전략의 핵심이 되는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에서 만드는 전기차 배터리셀에 필요한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 중이다. 그나마 배터리 4대 소재로 불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의 일본 의존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특수소재 관련 기술은 일본 기업만이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이 부분을 건드리면 국내 3사는 전 세계에 있는 공장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와 함께 알루미늄 파우치는 일본의 DNP와 쇼와덴코가 대표적인 기업으로 세계 점유율이 70%가량으로 높은 편이어서 대체 수입처를 찾기에도 버겁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한국이 무기로 삼을 만한 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라며 "거래 관계가 끊겨도 그쪽에서는 아쉬울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잘 접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고품질 바인더, 동박 제조에 쓰이는 설비, 전해액 첨가제 등이 일본 기업들이 원천기술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품목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4대 소재 의존도가 낮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일본만이 가진 특허를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미래전략으로 내세운 수소차도 사태가 심각하다. 수소자동차에 쓰이는 부품 대부분이 일본 등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은 수소차 시장에서 한국을 주요 경쟁상대로 보고 있다. 앞서 수소차를 처음 개발한 한국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미국·유럽연합(EU)과 함께 수소차와 충전소 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연대를 구축한 것도 견제의 일환이다. 

수소차의 엔진인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촉매나 전해질 및 분리판 등에 사용되는 소재 일부는 독일과 일본에서의 수입 비중이 높다.  수소탱크는 모두 일본에서 공급된 탄소섬유로 만들어진다. 연료전지 내 기체확산층(GDL) 부품은 국내에서의 생산이 전무해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일본 도레이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탄소섬유는 수소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수소연료탱크 제작에 필요한 핵심 소재다"라며 "자동차는 아직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자동차 부품과 소재의 가짓수가 많기 때문에 규제가 확대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완성차의 경우는 그나마 국산화 비율이 높아 이번 조치에서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점유율 약 70%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현대 모비스, 만도 등을 통해 상당수의 부품을 '국산화'한 상태다. 

그러나 중소 업계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는 "일본 경제 보복 상황이 장기화 될 경우, 자동차 업계는 큰 어려움에 빠질 것"라며 "규모가 있는 기업들이야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2~3차 협력사 및 부품 공장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기에,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태가 악화 일로로 치닫자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7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대책 논의를 위해 주요 기업 총수들을 면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참석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에는 청와대에서 30대 그룹 총수들과 간담회를 갖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최근 한국을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를 위해 오는 24일까지 공청회를 거쳐 8월 중 시행령을 개정할 계획이다. 화이트 국가 제도는 일본 정부가 안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국가에 대해선 이런 비리스트 품목의 개별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하주화기자 u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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