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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내가 하나 있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요? 김개미 시인은 가끔 긴 머리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고, 턱을 높이 쳐들고 실눈으로 잘난 척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고 합니다. 얼음 나라 왕비님 역할을 맡아 머리카락이 사람들 얼굴에 붙어도, 꽃밭에 갓심은 튤립 모종을 뽑아도, 앞집 꼬마 동우의 아이스크림에 붙어도, 절대 고개 숙이지 않고 함부로 사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상 속 아이는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전부 해보고 싶은 속내를 과감하게 이야기해요. 하지만 김개미 시인이 이런 상상을 하는 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는 김개미 시인이 만들어놓은 조그만 구멍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여왕이 된 김개미 시인을 보고 말았어요.

# 레고 나라의 여왕
여봐라! 나는 여왕이시다!
누가 감히 고개를 빳빳이 쳐드느냐.
무엄하다!
당장 무릎을 꿇지 못할까!
호통도 내가 치고
스무 명이나 되는 졸개들 무릎도 내가 꿇린다.
무릎을 못 꿇는 레고 인형은 엎드리게 한다.
에고, 이게 무슨 꼴이냐.
여왕님 한번 하려고
졸개를 스무 번이나 하네!

레고 나라에서 여왕이 된 아이는 이미 세상을 배운 것 같습니다. 여왕님 한 번 하려고 졸개를 스무 번이나 해야 한다는 것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많아야 하는 왕의 셈법을 알고 있으니 여왕이 될 자격이 충분한 거지요.

# 레고 나라
오늘처럼 야단을 많이 맞은 날은/ 레고 나라에서 자고 싶어.// 필통만 한 레고 기차를 타고 가면/ 레고 나무, 레고 꽃이 멋진 레고 정원,/ 지붕이 빨간 레고 집으로 들어서는 거야.// 레고 빵, 레고 과자를 먹으면서/ 야단 같은 건 절대로 절대로 안 치는 레고 엄마랑/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혼나지 않고/ 한밤중에도 하나도 안 무서운 레고 나라에서/ 나는 행복한 레고 아이야.// 레고 엄마랑 소꿉놀이를 하다가/ 레고 침대에서 잠이 들면/ 꿈속에서 동생만 살짝 만나야지.// 오늘처럼 엄마가 미운 날은/ 레고 나라에서 자고 싶어./ 밤새도록 진짜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어.//

시인은 오늘 엄마한테 야단을 맞았대요. 엄마가 많이 미운 날입니다. 그런 날은 레고 아이가 되어 레고 나라에서 잠을 자고 싶다고 합니다. 레고 엄마랑 소꿉놀이 하다가 잠이 들고 싶다고 합니다. 밤새도록 진짜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서 엄마가 빨리 달래주러 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아동문학가 장그래
아동문학가 장그래

# 개미는,
개미가/ 멀리까지 갔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려면/ 멈추는 순간이 있어야 해./ 달리는 순간만큼/ 멈추는 순간이 있어야 해.// 개미는/ 뙤약볕으로 달려 나간/ 작고 까만 개미는/ 계속 계속 다시 출발해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거야.//

김개미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이름까지도 시속에 척 갖다 붙여놓고 개미가 되어 속내를 이야기합니다. 레고 나라에서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다던 아이는 상상을 멈추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뙤약볕으로 달려 나간 작고 까만 아이는 계속 계속 집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시 속의 개미처럼 상상과 변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동시 속으로 여행을 떠나, 여름 무더위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아동문학가 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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