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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신춘희

올백 머리, 검은 정장
순백은 거부한다
차이와 차별 사이에서 나는 독존이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수치와 통계만 믿고 패턴을 주장 말라
흰색 무리 속에 단 한 컷의 블랙 전위
그것도 같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나다
 

△신춘희: 매일신문신춘문예 시조, 동시, 시 당선, 시집 『풀잎의 노래』『득음을 꿈꾸며』『중년의 물소리』『늙은 제철소』 등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어떤 진리든 완벽하다고 느낄 때 이미 그 진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사각형이라 믿었던 지구를 에라토스테네스(기원전 276~195 추정)는 둥글다고 증명하기도 했고, 모든 우주가 지구를 중심축으로 돈다고 설파했던 종교인들의 주장도 후일 터무니없는 설법이었음이 밝혀졌다.

진리가 무너지면 그 충격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믿었던 사랑이 배신이 되고, 틀림없다 생각했던 진실이 허구가 되면 우린 절망하기도 하고 그 충격에 쓰러지기도 한다.
위 시의 제목이 '블랙 스완(Black Swan)' 즉 검은 오리다. 이 우주에 오직 백조만 존재한다고 믿었는데 17세기 한 생태학자가 실제로 호주에서 살고 있는 흑조를 발견함으로써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인식된 상황이 실제 오류임이 발생 되고 말았다. 이 충격적 재발견이 오늘날 월가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의 저서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두루 쓰이는 용어로 변했다.
이 시는 획일적이고 영원불변이라고 믿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하겠다는 자기만의 고집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머리가 백발로 변하는 건 사람인 이상 자연스러운 노화의 흐름임에도 그는 검게 염색을 하고, 검은 정장만 입으며 순백을 거부할 거란다. 차이와 차별 그 사이에서 독존하겠다는 이 옹고집은 또 뭔가?

예외도 거부하고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 되겠다는 저 자신감 뒤에 오는 깊은 내면에는 흑과 백의 양비론이 아닌 저 사이에서 놀겠다는 자기만의 해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왼쪽 끝에서 보면 모든 게 오른쪽이고, 오른쪽 끝에서 보면 또 모든 게 왼쪽이듯 어느 방향 어느 위치에서 시선을 고정하느냐에 답과 진리는 생성되기 마련이다.
연암 박지원도 열하일기 '도강록'에서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저 언덕과 강물 이 '사이'에 있는 것이라 했다. 이분법이 아닌 삶의 걸음걸음마다 새롭게 찾아서 나아가는 것이란다.
증명된 '수치'와 '통계'를 믿고 '패턴'을 주장하는 다수의 무리들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만의 올곧은 사념과 철학을 믿으며 가겠단다. "그래서 나는 나"라고 당당히 밝히는 시인의 저 옹골찬 주의와 주장이 믿음직스럽다. 시인이란 모름지기 가운데 서서 눈치나 살피며 좌고우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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