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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일본이 2일 한국의 중단 촉구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끝내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양국 간 갈등의 골은 이제 파국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깊어지게 됐다.
울산은 대일 수입선이 막히면서 주력산업 전반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 등 기초 소재나 부품·제조 장비 등은 아예 생산이 중단되는 등 중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략물자 수출마다 개별 허가 심사 받아야
지난 2일 일본 정부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의결로 '리스트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품목은 총 1,120개의 전략물자다.
이 중 857개는 기존에 '일반 포괄 허가'를 받으면 3년간 자유롭게 수출이 가능했던 품목이었다.
하지만 이젠 수출할 때마다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에는 약 90일이 걸린다. 수입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선 즉각적인 수급이 힘들어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아예 해당 품목을 들여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규제 대상인 전략물자에는 첨단소재와 전자·통신부품, 정밀기계 등이 있다.
이미 7월에 수출 규제 품목에 꼽힌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도 여기에 포함된다. 주로 소재·부품 분야다.
이 분야에서 일본은 세계적인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日 수입의존 상위 10위 중 4개 화학 관련 제품
소재·부품을 다루는 국내 기업은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차 타깃은 반도체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다. 다음으론 배터리나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이 영향권에 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의존도가 높은 상위 10개 품목 중 △정밀화학원료(3위) △플라스틱제품(4위) △화학공업제품(7위) △자일렌(석유화학품목·8위) 등 4개가 화학 관련 제품이었다. 이 가운데 수입산 자일렌의 일본산 비중은 95.4%였다. 자일렌은 인쇄나 고무, 가죽 산업 등에서 용매제로 사용된다.
국내에선 울산을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는 SK이노베이션과 한화토탈, 현대케미칼 등이 자일렌을 취급하고 있다.

#수소차·전기차 제조 주요 원료도 우려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탄소섬유와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높은 업체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울산을 생산 본거지로 하는 현대자동차가 그 중 하나다. 현대차의 수소차 내 연료탱크에 들어가는 탄소섬유 소재는 도레이, 도호, 미쓰비시레이온 등 일본 회사가 세계 시장의 66%를 점유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포장재 역할을 하는 '파우치필름'의 경우 일본 점유율이 85%다.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을 기준으로 하면 일본 파나소닉이 전 세계 점유율 1위(23.7%)다. 울산에 최대규모 사업장을 둔 SK이노베이션과 삼성sdi는 일본산 파우치 필름에 의존해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심사 절차에 돌입한 현대중공업도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이번 심사의 최대 변수가 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쟁국인 일본이 자국 조선업 보호 차원에서 경제보복조치 대상에 우리 조선업을 포함시키면서 기업 결합에 어깃장을 놓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과의 기업결합을 위해 지난달 1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심사를 신청한 데 이어 22일 중국에 신청서를 넣었다. 
나머지 심사국인 EU, 일본, 카자흐스탄 등에도 이달 중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앞서 지난해 세계 선박 수주 1위 현대중공업과 2위 대우조선해양 간의 합병이라는 '빅딜'을 두고 독점 문제 등을 지적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왔다.

#車업계 수입선 다변화 화학업계 공동대응 검토
현 상황에서는 등돌린 한일관계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일 정상이 자연스럽게 만날 가능성이 있는 9월 하순 유엔 총회가 하나의 반전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지만,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는 한 국제무대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지 않겠다는 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침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온 바 있다.

때문에 대기업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일본의 경제보복이 맞서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현대차를 포함한 자동차 업계는 부품의 수입선 다변화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효성이 수소차용 탄소섬유 생산을 준비 중이다. 수소차나 전기차가 아닌 내연기관차의 경우 일본의 수출규제 영향이 미미하다. 부품 국산화율이 95%에 달해서다.
화학업계도 대일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경쟁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에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석유화학 원료 비상…상의, 피해 파악 돌입
그러나 대일무역의존도가 높은 울산지역 중소기업들은 울산의 대일 수입선이 막혀 당장 생산을 중단하는 등 손놓고 당하게 될 처지에 놓였다.
울산지역 기업들인 지난해 일본에서 들여온 상위 5대 수입품은 철강판이 1억5,257만달러(36.8%↑)로 가장 많고 석유화학 기초유분 6,942만달러(-8.5%), 석유화학중간원료 6,814만달러(-25.6%), 석유제품 6,117만달러(81.6%), 원동기및펌프 4,775만달러(40.6%) 순이었다.
상위 10대 수입품목에는 기타정밀화학제품 4,644만달러(-1.7%), 자동차부품 4,180만달러(-29.9%), 동제품 4,137만달러(-18.5%), 금은및백금  3,784만달러(75.5%), 계측제어분석기 3,001만달러(20.5%) 등이 포함됐다.
특히 상위 20개 수입품목 가운데 고무제품(508.2%), 산업용 전기기기(282.0%), 형강(267.9%), 석유제품(81.6%), 금은 및 백금(75.5%), 기타석유화학제품(54.4%), 원동기및펌프(40.6%), 기타석유화학제품(54.4%), 철강판(36.8%) 등 석유화학 원료인 기초소재와 철강·비철금속 소재·부품 수입이 급증했다.

무역협회울산본부 관계자는 "데이터 상으로 보면 일본의 수입규제가 강화되면 정유·석유화학과 철강(비철금속) 자동자 등 관련 제품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특히 대기업보다는 대일 무역 의존도가 높은 중소 제조업체의 대응도 더욱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지역 상공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피해가 예상 되는 기업을 파악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울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현재까지 대일 무역과 관련돼 직접적인 피해접수 사례는 없지만 자칫 중대 피해가 발생할 개연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관련 기관이나 협회 등과 업무공조를 통해 지역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파악하는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주화기자 u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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