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와 가난으로 처참한 지역 교육 유공자 후손
병고와 가난으로 처참한 지역 교육 유공자 후손
  • 정혜원
  • 승인 2019.08.1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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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진中 설립 이종산 선생 장손 상영씨
척추·동맥 등 수술만 5차례 받아
임대 원룸서 외출도 못한채 기거
복지관 제공 도시락으로 끼니 해결
울산 북구의 한 LH임대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상영 씨의 모습. 그는 '방어진수산초급중학교'(현 방어진중학교) 설립자인 고 이중산 씨의 장손이다.
울산 북구의 한 LH임대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상영 씨의 모습. 그는 '방어진수산초급중학교'(현 방어진중학교) 설립자인 고 이중산 씨의 장손이다.

 

"삶의 끈을 놓으면 모든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방어진수산초급중학교'(현 방어진중학교) 설립자인 고 이종산 씨의 장손인 이상영(74)씨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덤덤하게 말했다.
일제 식민지 해방 후 지역 사회의 교육에 큰 공헌을 한 이종산 씨의 후손이지만 그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다. 북구에 위치한 한 LH임대주택에서 5년째 생활하고 있는 이 씨의 삶은 고되보였다.


한달에 보조금 30여 만원으로 7평 남짓한 원룸에서 하루 하루 겨우 버티고 있다. 최근 3년간은 척추, 동맥 관련 대수술을 5차례나 받아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지경에 처해있다. 잠자는 시간외 가슴부터 허리까지 감싸는 척추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어 지금 같은 찜통 더위에는 땀띠로 고역을 치르고 있다. 무더운 여름, 좁은 공간에서 365일을 보내야 하는 이 씨는 앉은뱅이 신세나 다름 없다.


인근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점심 한끼로 하루를 떼우면서도, 이마저도 다른 사람이 가져다줘야 먹을 수 있다.
광복 직후 울산 교육사에 한 획을 그은 고 이중산 씨의 장손이 현재 병고와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이종산 씨는 일본 식민지 해방 후 동구 지역에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을 세웠다.
이 씨는 어장운영으로 번 돈으로 10만평의 토지와 당시로 거액이었던 200만 원을 학교 시설비와 운영비로 내놓으면서 1947년 '방어진수산초급중등학교'를 세웠다.
당시 4살이었던 이상영 씨는 어린 나이였지만 어렴풋이 그 때를 회상했다.


그는 "당시 할아버지는 후리어장으로 돈을 많이 번 자수성가자셨다. 물고기들이 일산진으로 많이 몰려와 학교를 세울 정도로 떼부자가 됐다"면서  "당시 지역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역에서 최초로 중등교육기관이 생겨 지역에서도 좋아했고, 학생 수도 꾸준히 늘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당시 사립학교 운영은 교사 월급, 학교 제반비용 등 모든 것을 학교 법인의 기본재산으로 충당하다보니, 경영난에 봉착하게 됐다.


1949년 이종산 씨가 서거 후 그의 외아들인 이율우 씨가 맡아 운영을 했는데, 학교 재정이 어려워지자 1959년 '방어진중학교'로 명칭을 바꾸고 공립으로 전환됐다. 이때 이율우 씨는 생전 아버지 교육의 뜻을 받들어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학교를 넘겼다.
이후 학교 건립에 많은 돈을 들인 이 씨의 집안은 점점 기울어졌다.


그는 "본래 대학진학을 꿈꾸고 있었는데, 낙방해 집안도 기울어지고 있는 시기여서 군 입대를 지웠했다"면서 "군 제대 이후에도 서울대 입학 시험을 한 차례 더 치뤘는데, 결국 떨어져 지금까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하루 일해 벌어먹고 살고 있다. 지금은 몸이 다 망가져 그마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착잡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를 본받아 삶을 잘 이뤄나가고 싶었는데, 장손인 나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다.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지독한 생활고와 병으로 잠시나마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이 씨는 10년 전부터 다닌 울산동해교회의 황진선 담임목사와 신도들을 통해 삶의 희망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는 "주변 지인과 교회 사람들을 통해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난 지금까지 살고 있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면서 "할아버지의 업적에 비해 하루를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지역 사회에 큰 공헌을 한 후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리체계나 제도가 전혀 없는 실정이니 이런 부분에도 지자체에서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혜원기자 us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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