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벌에 쏘였다남호섭 글·고찬규 그림창비
벌에 쏘였다남호섭 글·고찬규 그림창비

# 모과
모과 하나를 따 들고
주호가 내게 왔다

마음병으로 입원한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
시로 써서 발표하더니

며칠째 도서관에 파묻혔던 모양이다
몇몇 시집 제목을 말하다가
고개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시집 하나 소개해 주세요"

머뭇머뭇 생각해 보니
내가 읽은 시집이 오백 권은 넘으리라

하지만 주호가 가져온 모과만큼
향기가 짙은 것은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시집'이 있어요. 세상이 숨겨 놓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세상 구경' 동시집입니다.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뿐 아니라 식물, 동물, 모든 생태가 우리가 되는 『벌에 쏘였다』는 남호섭 시인의 동시집입니다.
'어린이들이라고 이해 못 할 세상은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인은 어른이 '보여 주고 싶은 세계'만 어린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고, 겪고, 해결해야 할 모든 세상 이야기를 담담하게 마주합니다.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주체로 인정하고, 새들도 숲에서는 걷는다는 시인, 그의 세상 이야기 속으로 가 볼게요.
주호의 마음은 이미 모과 향보다 깊어 보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과 향이 답을 준 것 같습니다.

# 벌에 쏘였다
목숨 다 바쳐
벌이 나를 깨우쳤다

기쁘고 슬프고 걱정스럽고
욕심내고 성낸 일
모두

아픔 하나로 사라졌다

벌침 한 방으로 세상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은 시인의 시심은 해탈의 경지인 듯합니다.
마음의 걱정 근심이 몸이 벌에 쏘인 몸의 아픔 하나에 모두 사라진 삶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몸을 초월할 수는 없지요. 어쩌면 밤새 고민하던 큰 걱정덩어리가 손톱 가시레기 보다 못한 것 같다는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벌에 쏘인 여기 이곳, 이 순간처럼 지금을 사는 것이 답일까요? 아동문학가 권도형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