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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기념물 제4호 처용암.
울산시 기념물 제4호 처용암.

울산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 처용암(處容岩)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곒 떨어진 바위섬이다. 처용암의 유래 전설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신라 헌강왕 설화 속 기인 '처용'
신라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년)이 이곳에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이에 일관이 동해 용(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 달래줘야 한다고 보고했다. 왕이 즉시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령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고, 이후 이곳 이름을 개운포라 붙였다고 전한다.  또한 당시에 세운 절은 현재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다. 왕의 명령에 동해용이 크게 기뻐해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가 처용이다. 왕이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해 머물러 있도록 하고, 급간(級干)의 관등을 주었다.  아내가 대단히 아름다워 역신(疫神)이 흠모한 나머지 사람으로 변해 밤에 몰래 그 집에 가서 동침했다.  이 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역신은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당신의 아내를 사모해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긴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울산 지방 호족의 아들이라는 학설도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 들였다고 한다. 이때 처용이 불렀던 노래가 유명한 신라 향가 '처용가'다.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고 했으나, 처용의 신분에 대해서는 울산 지방 호족의 아들, 혹은 아리비아 상인 등의 학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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