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춘풍(持己春風) - 조국에게 국민이 묻는다
지기춘풍(持己春風) - 조국에게 국민이 묻는다
  • 울산신문
  • 승인 2019.08.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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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겸 국장

딱 3년 전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표면화되기 전, 청와대에서 균열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십상시와 문고리 3인방, 우병우 실세 민정수석 등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여러 가지 비리가 청와대 담을 넘어 소문의 춤을 추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 무렵 필자는 이 칼럼란에 구벌인세(狗伐人勢)라고 썼다. 날뛰는 개보다 그 개의 주인이 문제라는 사자성어였다.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처가의 여러 잡음으로 뒷말이 나돌고 아들의 의경 '꿀보직'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지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각종 의혹처럼 시작은 미미했지만 갈수록 여론이 뒤숭숭해질 무렵이었다.  

당시 여론의 대세는 실세 수석의 일탈과 도를 넘은 갑질이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 주류였다. 하지만 당시 여권인 새누리당은 "내만 그렇나 뭐, 니 아들 군에 갔을 때 깃털 같은 권력이라도 가진 자라면 그냥 팔짱만 끼고 있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며 되받아쳤다. 하지만 여론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그 여론의 일단은 이랬다. 당시 칼럼을 그대로 옮겨본다.

-인지상정이야 보편적 묵인사항이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 아닌가. 문제는 왜, 반드시, 꼭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을 대통령의 최측근에 그냥 두려하는가에 있다. 그래, 야당의 공세가 대통령을 향해 있고 그 흔들기의 파장이 나비효과로 번져 내년 대선에서 10년 만의 야당 정권이 나올 수 있기에 밀리면 안 될 수 있다. 우병우는 우병우로 끝내면 되고 여론은 오래가지 않는다. 물고 늘어져 끝내는 만신창이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상대는 그 정도 하수는 아니다. 우병우를 버리지 못하는 대통령, 버릴 수 없는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은 의도가 뒤에 숨었다. 슬쩍 이야기를 만들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식의 정치공세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개가 아니라 주인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 사건이 있고 3개월 뒤 탄핵 정국이 본격화됐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3년 후 다시 구벌인세를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은 둘로 갈라진 사회다. 통합과 화합을 이야기하고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갈라진 두쪽의 중심부엔 멸시와 조롱이 형용사와 관용어로 치장한채 숨어 있다. 개를 야단치고 혼을 내는 주인에게는 개의 문제만 이야기 하지만 가만두는 주인에게는 미친개처럼 달려드는 야성이 숨어 있다. 그래서 선택이 필요하다. 스스로 집을 나서 들개가 되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적절한 조치가 답이다. 시기를 놓치면 개는 말할 것도 없고 구경하는 이들이 몽둥이를 들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은 명징하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울림이 징 소리만큼 먹먹한 이 문장은 박근혜를 밟고 적폐의 그림자를 지웠다. 지금 우리 사회를 혼돈의 늪으로 끌고 가는 조국 사태의 주인공, 바로 조국 자신은 유난히 이 문장을 즐겨 썼다. 그리고 각주도 달았다. "사람이나 정권에 대한 평가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해야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이 두 가지 문장으로 교수 시절 날마다 새로운 문장을 변형했다. 강연과 언론과 트위터 등을 통해 쏟아낸 그의 명징한 단어들은 날카로운 문장으로 날을 갈았고 날카로움이 섬광으로 번뜩이면 그 이름 조국은 미래의 조국이 되어 풍선처럼 높이 올라갔다.

조국은 한때 우리 젊은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과정의 평등'과 '공직자의 무결함'을 강조하는 문장은 힘이 있었고 목젖은 반올림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지난 주말 조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에 항의하며 촛불집회를 열었다. 서울대생들은 조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후보직 사퇴를, 고대생들은 조 후보자 딸의 '부정입학'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서울대 학생대표로 나온 연사는 "정부의 정책을 이행해나갈 만한 전문가가 조국 후보자 한 명뿐이라면 무능이고,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임명을 강행한다면 기만"이라며 "국민들의 참담함과 배신감에 공감하고, 공직 후보자 자리에서 책임 있는 모습으로 내려오시길 바란다"고 준엄한 질책을 뱉었다. 

서울대 법학과 91학번으로 현재 모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는 한 참석자는 "이번 집회에 참석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며 "하지만 정치성향을 떠나 고3 학부모이자 교수, 그리고 시민으로서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결국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는 내로남불, 적폐란 비판을 받지 말고,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후보직을 사퇴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 후보자 딸의 모교인 고려대에서도 조 씨의 부정 입학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명백한 진상규명', '자유·정의·진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진상규명 촉구하라, 입학처는 각성하라", "정치 간섭 배격하고 진상에만 집중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본관 주변을 행진했다.

젊은 세대가 다시 촛불을 든 것은 바로 기회와 과정, 결과가 균등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며 정의롭지 않았다는 판단때문이다. 

3년 전, 우병우의 아들 문제가 특혜시비로 젊은층에게 불을 질렀을 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운전병 특혜의혹만으로 우병우 사퇴를 요구했다. 당시 학생들은 지켜보자는 쪽이었지만 정유라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특기자 입학부터 온갖 특혜로 학창 시절을 보낸 정유라는 2030세대의 억눌린 불평등에 대한 반감에 불을 질렀다. 당시 이를 근거로 선동하던 인사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젊은 세대의 궐기를 부추겼다. 

바로 교육 사이트 '공신닷컴'의 대표인 강성태와 개그맨 김제동·김미화, 가수 이승환 등이다. 강성태는 정유라의 특혜시비가 한창일 때 "(죽어라 공부해도) 학비가 없어서 대학을 못 가는 사람도 있다"며 "누구는 비선 실세 부모를 둔 덕에 없던 T.O까지 만들어 대학에 합격했다. 이 지경인데 어떻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떳떳하게 하겠냐. 오늘은 진짜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참, 여러분 볼 낯이 없다. 부끄럽다"고 외친 인물이다. 한창 공중파에서 언론인 코스프레를 하는 김제동은 어떤가. 그는 과거 정유라 입시 부정 당시 "열심히 공부하는 청소년들의 의지를 꺾었으며, 이 땅의 아빠 엄마들에게 열패감을 안겼다면 그것이 헌법 제34조 위반이고, 그것이 내란이다"라고 핏대를 올렸다. 그때는 그처럼 두 주먹 불끈 쥐었던 인물들이 지금은 침묵하고 있다. 

문제는 버티기다. 조 후보자는 처음 의혹이 터져 나오자 "내일이라도 청문회를 열어주면 모든 걸 해명하겠다"고 하더니 비리 의혹과 딸 문제 등이 무더기로 쏟아지자 생뚱맞게 정책발표로 여론을 무시했다. 그러다 여권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펀드와 사학재단의 기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무리 문제가 드러나고 청문보고서 채택이 거부돼도 임명을 강행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청문회 당일만 때우면 된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여기에다 언론 검증을 가짜뉴스로 매도하며 비호에 나선 집권당은 '국민청문회'라는 괴상한 문패를 걸고 셀프검증의 끝판왕을 보여주겠단다. 

남의 비행기 얻어타고, 고난의 행군 같은 열차 행렬로 몇 번 악수하더니 어느새 트럼프가 뒷배가 된 김정은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군국주의 향수에 취한 섬나라 총리는 혐한의 문장을 더해가지만 우리 사회는 법무장관 후보자 비리 의혹에 날밤을 새우고 있다.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8월 뜨거운 하늘아래 촛불까지 들어야 하나. 가슴이 답답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은 여전히 여론을 외면한다. 

곧 경술국치일이다. 치욕의 역사가 한 세기를 넘어선 여름, 우리는 아직 미래로 향하지 못한 채 어제에 매여 있다. 무엇이든 둘로 갈리는 사회는 불행하다. 다양한 의견이 융합되는 사회를 꿈꾸지만 천만에 우리는 딱 두 쪽으로 갈라섰다. 그래서 한 쪽은 밀어붙인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과거의 경험치가 왜 꼭 조국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밀리지 않으려고 으르렁거리며 버티는 개 목줄을 온 힘으로 쥐어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