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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지역에서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지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과 지역의 지명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울산은 근대화의 기수이자 산업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지만 사실은 오랜 역사성을 가진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도시보다 많은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 울산이다. 문제는 이같은 문화적 자산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울산은 대내외적으로 역사성이나 문화적 전통성에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고 지역민들조차 이 부문에 대해서는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짙은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제기는 있어 왔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언어, 풍속 등이 담긴 '울산의 지명사(地名史)'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를 근거로 지역 지명사를 정비하고 이를 통해 애향심을 높이고 울산의 정체성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같은 움직임은 땅의 이름은 결국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겼고, 생활 풍습과 지역 문화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문제는 울산의 경우 지난 1986년 10월에 발간된 '울산지명사'가 있지만, 30년 이상 세월이 흘러 이런 책이 있는지조차도 모를뿐더러 설사 안다고 해도 잊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수도로 인식된 울산은 그동안의 공업단지 조성과 주거공간 확보 등에 따른 개발과정에서 많은 지명들이 파괴·변질되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울산의 값진 토속문화 유산인 산과 강(하천), 들판, 각 읍면동 등에 대한 근원을 재조명하고,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 사론을 재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문헌에 기록되거나 구전되는 설화나 전설을 현대감각에 맞게 재정리해 집대성할 필요도 있다. 

이와  관련해 올해 초 일부 지역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행정 동명 바꾸기가 무산된 일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울산 중구가 행정동 명칭을 숫자 나열식이 아닌 각 동의 지역성과 역사성 등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경하고자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으나, 상당수가 이를 원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는 지난 1월 행정동 명칭 변경에 대한 주민의견을 수렴하고자 지역 내에서 숫자식 동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반구1·2동, 복산1·2동, 병영1·2동에 대해 1차 설문조사를 벌였다. 1차 설문조사는 해당동 전 세대의 5%를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반구1·2동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찬성의견을 보였다. 이에 따라 중구는 반구1·2동 전체 세대를 대상으로 2차 설문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토대로 행정동 명칭 변경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차 설문조사에서는 동별 2가지씩 명칭 변경안을 제시했으며, 이는 1차 설문조사 선호 결과에 따라 선정됐다. 반구1동은 '반구동'과 '내황동'이, 반구2동은 '구교동'과 '서원동'이 제시됐다. 설문조사 결과는 중구의 의도와 달리 찬성과 반대가 엇갈렸다. 반구1동은 총 7,545세대 가운데 5,611세대(74.4%)가 응답했고, 이 중 4,034세대(71.9%)가 동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자 중에선 변경할 동 명칭으로 '반구동'을 택한 주민이 3,590세대(89%)로 압도적이었다. 반면, 반구2동은 동 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주민이 더 많았다. 명칭변경으로 주민들에게 큰 거부감이 없었지만, 기존과 완전히 다른 명칭은 반대의견이 많은 것으로 중구는 분석했다. 중구는 결국 반구1동만 명칭을 변경할 경우 오히려 혼란이 생길 것으로 판단, 기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오랜 기간 획일적으로 사용해온 명칭을 바꾸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지역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명칭으로 바꿔나가는 데 있다. 지명 문제가 나온 김에 이번 기회에 중구만이 아니라 울산의 전역에 행정구역상 정해진 구·군과 동·읍·면의 명칭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산업수도로 인식된 울산은 우리나라 어느 도시보다 경제개발에 따른 대규모 공장 등 공업단지 조성과 주거 공간 확보에 따른 토지 등의 형질 변경이 가속화됨에 따라 땅의 형상이 크게 바뀌었다. 그로 인해 과거의 지명들이 파괴, 변질되어 사라졌거나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애정이다. 무엇보다 울산의 지명과 관련된 모든 역사적 자료들을 정비하고 보존해 울산사람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고, 애향심 고취와 정체성 확립을 위해 지명과 행정명을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울산에 남아 있는 수많은 지명과 그에 관련된 전설·설화 등을 담아내 보존하고 전승하는 작업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지명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가 필요하다. 문제는 관광도시로 나가는 울산시가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집중적인 투자를 게을리한다면 이같은 문제는 지속적으로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새롭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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