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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이 꽃이 강바람을 타고 있다. 잠시 휘청하는듯하더니 다시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댄다. 때 이르다 싶은 코스모스 무리 속에서 순순한 그녀의 향기를 맡는다. 

그녀는 그럴싸하게 모양새 나는 자리에 앉지 않는다. 뒷줄 끝에 서서 누가 비뚤게 줄을 서 있는지, 누가 뜨겁게 내리쬐는 볕을 버거워하는지, 그녀의 존재감은 늘 뒤에서 앞자리를 빛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 화려한 무대 뒤에 주인공을 위한 도우미의 손길이 부산한 것처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매양 뒤편에 있다. 수시로 그녀의 존재감을 의심하게 할 만큼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존재감이란 자신이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들추어 내주는 것임을 그녀를 보면서 배운다. 

오늘도 인터넷 동인 카페의 한 줄 인사말에 흔적을 남겼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온전한 공간을 두고도 직사각의 작은 칸에 댓글로써 자신을 나타낸다. 정이 채 덜 든 카페에 들어와 쭈뼛대는 회원이 없는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다정히 짚어 답하고는 사라졌다. 마우스를 옮겨 콩알만 한 그녀 얼굴 사진에 대고 클릭해 본다. 하얀 챙모자를 쓰고 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턱밑에 괴고 코스모스 속에서 웃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특별히 예쁘달 것 없는 사람이다. 

얼마 전, 노래방을 갔을 때였다. 한동안 조용히 있던 그녀에게 마이크는 예외 없이 쥐어지게 되자 슬슬 분위기를 살리나 했더니 다른 이가 민망하지 않게 두 어 곡조 선창을 했다. 노래가 거듭될수록 보는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하지 않는 팔 동작, 손목 움직임, 고개를 까닥대는 모습과 설핏 봐서는 눈치조차 못 챌 발림 동작까지, 시나브로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치기에 십상인 행동 때문이었다. 

게다가 술에 관한 한 남다른 헤엄재간이라도 있는 양 특별해서 허풍 같은 거품으로 겁주는 맥주나 속을 알 수 없는 뿌연 막걸리는 사람을 가리는지 종이컵 두 잔의 양으로 내 다리를 마비시켜버리건만 그녀에겐 무사통과다. 사람의 관계란 자석의 상극처럼 다른 것에서 끌리는 건지 술이 나를 거부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가 술을 좋아하는 것인지, 술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헤픈데픈 사는 나와 달리 술과 인생의 이콜 관계를 긍정하며 진중한 삶의 무게를 캐 낼 줄 아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즈음, 다가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았을까, 어느 날 카페 창에 빨간 공지 하나 떠 있었다. 그녀가 번개 모임을 주선한 것이었다. 선착순 다섯 장의 연극 표가 미끼였기에 재빨리 손을 들었다. 공연은 초가을 밤에 걸맞은 분위기였고 동행한 이들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공연을 마치고 벅찬 감정을 주체치 못하고 나오는데 손목을 이끌며 저녁을 먹자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돌아오며 참말 혜너른 그녀의 품이라며 입을 모았다. 

살살이 꽃 한 송이를 꺾어 하늘을 향해 날려본다. 팽그르르~ 팔랑개비처럼 돌다가 살며시 내려앉는다. 작은 몸뚱이를 이리저리 나누어 쓰고도 불평 없이 뒷자리를 찾아가 앉은 그녀의 몸짓인 양 가볍다.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댄다고 살살이 꽃이라 불리는 우리말 이름이 다정하다. '소녀의 순정'이라는 꽃말 또한 해말간 마음으로 봉사하고 남을 배려하는 그녀를 상징하는 듯 닮았다.

센 바람에 살살이 꽃이 일렁인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하다가도 다시 일어선다. 노래방 바닥에 발을 대고 앞 발끝을 들어 까딱까딱 장단을 맞추며 분위기를 타던 그녀처럼 부드럽게 흔들댄다. 어디서든 으뜸의 주인공이기보다 잡다한 풍경을 보듬어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살살이 꽃처럼 따스한 언행으로 사람살이를 풍요롭게 만드는 그녀를 생각하며 강변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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