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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동계는 오랜 관행처럼 투쟁 일변도의 운동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노동계 전반의 노동운동 방식을 두고 후진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강경 투쟁 일변도의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경 투쟁을 벌이는 노동계도 오랜 경험을 통해 파업과 같은 과격한 투쟁방식이 유리한 교섭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파업을 통해 추가로 얻어내는 것보다 파업으로 인한 임금 손실이 더 큰 경우도 많다. 성과가 비슷하다면 파업하지 않고 소통과 타협으로 교섭을 마무리하는 것이 노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장황하게 노동운동 이야기를 했지만 이는 무엇보다 오랜 관행 같은 파업이 올해 현대자동차에서 사라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다. 현대자동차 노사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은 대내외 위기에 조합원들이 공감해 8년 만에 파업 없이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외적으론 한일 경제 갈등 상황에서 교섭이 장기화하면 비판적 여론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내부적으론 통상임금 논란을 대법 판결보다 노사 합의로 마무리 짓는 것이 이득이라는 분위기가 타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분규 타결의 성과는 상당하다. 현대차는 이번 임단협에서 경영실적에 연계한 합리적 임금인상 및 성과금 지급에 합의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불확실성 확산 등 대내외 경영환경 리스크에 노사가 공감한 결과로 보인다. 향후 노사가 임금인상과 성과금 규모를 산정하기 위한 더욱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한다면 소모적 갈등과 파업에 대한 우려는 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지난 7년간 끌어온 임금체계 개선에 합의하며 통상임금 및 최저임금 관련 노사 간 법적 분쟁을 해소하고, 각종 수당 등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 미래지향적 선진 임금체계 구축에 한 걸음 다가간 것도 성과로 볼 수 있다. 격월로 지급했던 상여금 600%를 매월 분할 지급으로 변경하면서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일부 근로자의 최저임금법 위반 논란도 없앴다.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대상 특별고용 일정을 단축하고, 청년실업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문제와 직결된 정년연장, 법치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해고자 복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긍정적인 결과물이다.

아울러 노사가 일본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품 협력사를 돕기 위해 '상생협력을 통한 자동차산업 발전 노사공동 선언문'을 채택하고, 협력사의 안정적 물량 확보와 부품·소재 국산화를 통한 대외 의존도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도 고무적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교섭에서 한국GM, 현대중공업 노조 등의 파업 소식에도 흔들리지 않고 노동계 맏형다운 의연함과 뚝심을 보여줬다. 실리·합리성향 이경훈 집행부가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간 무문규를 이끌었던 것과 비교해 강성으로 분류되는 현 집행부가 무분규로 잠정합의를 도출한 것은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번 타결과정에서 현대차 노조가 보여준 두 차례의 파업 유보는 그동안 강경 이미지가 강했던 노조의 위상을 다르게 만들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조합원 파업 찬성과 노동위원회 조정 중지 결정 등 합법적 파업권을 확보하고도 한일 경제 갈등 등 정세를 고려해 두 차례 파업을 유보했다. 현 노조 집행부 성향이 강성인 점을 고려하면 파업 유보 결정이 쉽지 않았던 것을 가늠할 수 있다. 노조는 한일 경제 갈등과 미·중 무역 전쟁 속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귀족노조'라는 사회적 고립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투표를 앞둔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조합원들도 이에 동의해 가결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진통도 있었다. 이번 임단협 투표 기간 동안 일부 현장조직에서 기아차에 비해 격려금 규모가 적다며 부결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조합원들은 고정성 논란이 없어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한 기아차노조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은 임금(기본급) 4만 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급 150%+300만 원, 전통시장 상품권 20만 원 지급 등을 담고 있다. 또 임금체계 개선에 따른 '미래 임금 경쟁력 및 법적 안정성 확보 격려금' 명목으로 근속기간별 200만∼600만 원+우리사주 15주를 지급한다.

이제 현대차는 이번 임단협 타결 정신을 이어받아 대내외적인 악재를 헤쳐나가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자동차산업은 그야말로 위기상황이다.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라는 새로운 도전에 준비를 다 해왔지만 여전히 우리 자동차 업계의 대처는 우려할 수준이다. 여기에다 보호무역과 미중 무역마찰로 인한 시장의 불안감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차 노조가 위기는 곧 기회라는 자세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주길 울산시민들은 간곡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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