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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 보존 방안을 놓고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또다시 손을 잡았다. 추석 연휴 직전 문화재청과 울산시, 그리고 울주군은 반구대암각화 보존 및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내용은 반구대암각화의 지속가능한 보호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다는 부분이 핵심이다. 민감한 현안인 물 부족 문제는 낙동강 수계 통합 물관리 방안 등 울산시 대체 수원 확보에 적극 협조한다는 선에서 얼버무렸다. 새로운 일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는 협약을 놓고 언론은 또 호들갑이다. 십수년동안 반복된 협약 내용 보도만 보면 반구대암각화는 벌써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인류의 문화자산 보고로 유명세를 타고 있어야 할 상황이다.

어쨌든 여름 한철이 다시 지나갔다. 올해처럼 반구대암각화에 관심이 뜨거웠던 여름도 없었다. 암각화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는 시민단체는 사연댐을 적폐의 대상으로 손가락질하며 당장 물을 빼라고 농성 중이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밑걸음이었던 사연댐이 어느날 갑자기 적폐의 대상이 된 셈이다. 일부에서는 사연댐이 댐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이야기 한다. 공업용수 목적으로 조성된 사연댐이 10년 전 상류에 대곡댐이 조성되면서 목적과 기능을 잃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정치권은 물만난 듯 지원사격이 거세다. 얼마전에는 민주당 울산시당에서 단체장들이 포함된 TF를 꾸려 사연댐을 부숴버리겠다는 결전의 의지까지 드러냈다. 지금도 하루에 9만톤이 넘는 물을 식수로 공급하는 댐을 두고 기능이 상실됐다고 적폐로 몰아간다. 어디서 어떤 근거를 가진 주장인지 검증도 하지 않고 단체장들까지 가세한 상태다. 딱한 노릇이다.

어쩌다 사연댐이 이지경이 됐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1971년 겨울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됐을 때 사연댐은 울산공업센터의 용수공급을 하는 1등공신이었다. 7,000년의 원형을 간직했던 대곡천 역시 사연댐 건설과 함께 지리적 자연적 생태적 변화를 겪고 난 이후였다. 대곡천의 유속이 달라졌고 암각화 주변의 풍광도 변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사연댐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물기둥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다해왔다. 그리고 이제 울산시민의 식수원으로 상부의 대곡댐과 함께 하루 9만톤씩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적폐란다. 부숴야 한단다. 현재 공식적인 사연댐 수위조절 대책은 지난해 11월 국무총리실에서 합의한 물관리대책이다. 이 합의안은 구미, 대구, 울산을 포함한 낙동강 수계 지자체가 물관리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안과 구미 산업폐기물에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는 계획에 대해 각각 용역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언뜻 보면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재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어가는 흐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정할 일은 아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식수 문제는 한번 결정 되는 과정을 바꾸려면 진통이 따른다. 당장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물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생존권의 문제로 부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물 문제는 지자체마다 자신의 몫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맑은 물을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마다 식수원 확보를 제한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인데다, 다른 쪽으로 물을 보내주는 일은 국가적 차원의 결단이 아니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의 핵심은 사연댐이 정말 식수 기능을 상실했느냐는 점이다. 일부 단체들은 대곡댐 건설 이후 사연댐은 수원고갈과 주변 오염 등으로 식수댐의 기능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어디서 어떤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지 당황스럽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인 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팩트 체크를 해보면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지금도 사연댐에서는 하루 9만톤 가량을 식수로 공급하고 있다. 그것도 수질이 가장 좋은 상태의 맑은 물이 대곡댐 9만톤과 함께 18만톤의 양을 천상정수장으로 보내고 있다. 물론 이 물이 없어도 울산시민들의 식수문제는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연댐에서 공급하는 물의 양 만큼을 낙동강에서 받아쓰면 된다. 지금 사연댐을 적폐로 모는 이들은 바로 그 점을 대안으로 내세워 사연댐을 허물어 버리든 수문을 만들든 당장 물을 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식수는 그런식으로 얼렁뚱땅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낙동강물은 안정적 공급에 문제가 있는데다 연간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도 막대하다. 만약 낙동강 취수원 쪽의 오염사고 대책이나 물이용 대금의 정부 부담 문제 등이 해결된다면 이 문제도 열린 대책으로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문제의 근본으로 돌아가 보자. 결국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사연댐 문제가 난마처럼 얽힌 것은 반구대암각화를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첫단추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10년전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아집과 불통으로 원형보존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반구대암각화가 아닌 대곡천 암각화군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올렸다. 핵심은 원형보존이 아니라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는 일이었지만 울산의 식수문제는 알아서 하고 물을 빼라는 식의 주장이 팽배했다. 세계 어느 곳에도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을 가지고 주변 원형 운운하며 딴지를 거는 일은 없다. 문화재위원들이 고집하는 원형보존이나 형상변경 불가는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다. 반구대암각화는 불행하게도 사연댐이 들어선 이후 발견됐고 그 가치를 알았을 때는 이미 주변의 자연경관이 원형을 잃은 상태였다. 더구나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곡천과의 조화 역시 대곡댐 건설로 그 원형이 훼손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원형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자 아집과 독선에 불과하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보존은 지금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보존을 찾아가는 노력이다. 관점이 잘못됐으니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주변경관의 보존으로 연결하는 착오에 있다. 누군가는 반구대암각화를 두고 암각화 자체도 중요하지만 주변경관과 연결해야 온전한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게 단도직입으로 묻고 싶다. 세계의 어떤 문화유산이 자연경관과 패키지로 묶여 유네스코의 심사를 받았는지 증명해달라. 어떤 문화유산이 자연경관과 혼용돼 가치를 훼손당하고 있는지 열거해 달라. 답을 못한다면 입을 닫기 바란다.

현재 세계 문화유산은 670 여 건이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고 관리되고 있다. 이 670건 가운데 상당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 문화유산의 등재 기준을 몇 가지로 제한한다. 그 첫째가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 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 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단서를 달고 있다. 특히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것은 등재의 우선순위라고 밝히고 있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알타미라 동굴벽화 등이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유산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유네스코의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최고의 유산이다. 그런데 등재는 안 된다고 한다. 상당기간 물속에 잠기는 유산은 세계유산으로 인정할 수 없단다. 답답할 노릇이다. 연해주의 사카치아랸,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스웨덴 타눔, 아프리카 나미비아, 탄자니아 콘도, 아르헨티나 리오 핀투라스 등 모두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암각화다. 모두 나름대로 보존이 잘 된 암각화지만 훼손상태가 심각한 곳도 있다. 특히 관광지화된 암각화는 비록 물에 잠기는 곳은 없지만 인위적인 탐조시설이 들어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암석과 현대의 인공미를 연결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 어느 곳도 자연경관이 원형보존된 곳이라야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 이미 인류는 1만년 이상의 문화적 족적을 남겼고 그 세월만큼 인류의 인위적 흔적이 문화유산과 혼재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울산에서는 유독 자연경관과 반구대암각화를 연결하고 원형보존이라는 이상하고 괴팍한 올가미를 덮어씌우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반구대암각화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끼리 허구헌날 삿대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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