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선] 반딧불이 집
[시인의 詩선] 반딧불이 집
  • 울산신문
  • 승인 2019.10.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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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집

임재춘

고목나무 샘을 돌아온 바람이
빨래집게 하나 덜렁거리는
빈집 마당을 들여다본다
작은 산새 발자국이 혼자 놀고
눈물이 빛바랜 벽에 얼룩으로 남아있는 집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방황의 그림자가
문득 고향 쪽을 향해 멈춘다
뜰 안 능소화 한 줄기
붉은 노을 뚝뚝 떨구며 늘어진다.
잠시 머물던 초승달, 희미한 꼬리를 감추면
반딧불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임재춘 시인 : 1954년 충남 신도안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래된 소금밭'이 있다.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긴 여름의 끄트머리 어느 날, 허공의 정적을 깨뜨리는 반딧불이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던 광경을 바라보노라니 심장이 멈출 정도의 기쁨과 탄식이 절로 나왔다. 너무나도 황홀한 밤이었다. 밤마다 조우했던 개똥벌레를 태풍과 가을장마로 만날 수가 없어서 자못 궁금해 했던 터라 더 반가울 수밖에 없지만, 짬짬이 나가본 날도 개똥벌레가 보이지 않아 생을 마감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니 얼마나 큰 축복의 행운일까?


반딧불이는 번데기에서 벗어나 2∼3일 뒤부터 짝짓기를 하고, 짝짓기를 한 후 4∼5일 뒤 밤에 이끼 위에 300∼5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20∼25℃에서 20∼30일 만에 부화하며 애벌레는 이듬해 4월까지 250여 일 동안 6회의 껍질을 벗는 과정을 거치며 다슬기를 먹이로 수중생활을 하면서 자란 후 번데기가 되기 위해서 비가 오는 야간에 땅 위로 올라와 50여 일 동안 땅 속에 번데기 집을 짓고 그곳에 머물다 40여 일 후 번데기가 되며 6월경부터 어른벌레가 돼 빛을 내며 밤에 활동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2주의 짧은 수명기간 동안 낮에는 습하고 어두운 개똥이나 소똥 밑에 숨어 지내다가 밤이면 밖으로 나와 활동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불을 밝히고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짝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른벌레가 되어도 몸길이 불과 1cm, 그 작은 벌레가 짝짓기 한 번을 위해 장장 일 년에 걸쳐 여섯 번 이상의 허물을 벗는 변신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삶도 매미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꽁무니에 불을 밝히고 날아다니는 것도 겨우 보름정도인데 암컷 한 마리에 사오십 마리의 수컷들이 짝짓기를 하려고 발버둥 치는 저들의 경쟁적인 삶 앞에서 발광해야 하는 아픔이 우리 사회의 취업전쟁과도 같아 보이고, 오직 종의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들의 삶 앞에서 보면 우리 인간들은 너무 나약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펼쳐진 저 빛들. 비록 빛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기는 하지만 형설의 공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짝짓기를 위한 저들의 노고를 위해 만들어진 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 시절에는 동구 밖에 나가기만 하면 보았던 그 반딧불이를 기억 속에 묻어 두고 타향을 떠돌다가 희끗해진 머리로 고향이라고 돌아와 반딧불이를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니 이 보다 더 큰 행운은 없을 것 같다. 이제 반딧불이가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떠나간 자리에는 가을이 진을 치겠지만 이번 여름은 반딧불이 덕분에 정말 행복하게 보낸 듯하다. 박성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