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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울산은 7,000년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찍었다.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공식 이름표를 달았다.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이다. 이름이 별것이냐고 하지만 분명히 별것이다. 7,000년전 태화강이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부터 이 강에서는 인류사의 위대한 노정이 시작됐다. 그 질곡의 시간을 굽이쳐 흐른 강이 이제 새로운 명패를 얻은 셈이다. 굳이 이름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름표 자체가 대전환의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선사문화의 첫발을 디딘 이 땅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역사시대의 혈맥이 됐고 그 동맥이 삼한통일의 심장소리로 쿵쾅거렸다. 그 후로 1,000년, 유배의 땅이 되고 침략의 폐허로 버려졌던 땅이 부활했다. 조국근대화의 새 이름표를 단 이 땅에서 산업의 불기둥이 올랐고 강은 더럽혀지고 물길은 사나와졌다. 질곡의 그 강이 이제 영욕을 딛고 국가정원이라는 표창의 이름표를 달았으니 분명히 별것이라는 이야기다. 

울산의 오래된 시간을 더듬다 보면 결국 역사시대 이전의 울산이 가진 경이로움과 만나게 된다. 자료가 없으니 증명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아직도 울산의 곳곳에는 인류문화의 원형이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태화강의 원류, 대곡천 자락에 남겨진 반구대암각화이고 선사문화 1번지인 구곡계곡과 천전리각석이다. 강을 젖줄로 문화를 일군 이들이 왜 하필 울산에서 고래문화를 일구었을까. 의문도 잠시, 바위그림 들여다보면 수렵과 사냥으로 웅비하던 북방문화가 거의 절반이다. 고래를 잡던 해양문화와 호랑이를 때려잡던 북방의 기개가 왜 하필 구곡계곡에서 절묘한 만남을 했을까. 의문은 의문을 낳아 오래된 미래와 만난다. 

울산은 오묘한 땅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울산은 동쪽 무룡산부터 서쪽 문수산까지 한반도의 광활한 산자락이 동해로 뻗어가는 종착지다. 그 산세에 굽이친 다섯 자락의 강이 동해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은 가히 비경이다. 경치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울산은 원시시대부터 온갖 식생의 보고가 될 자산을 갖춘 셈이다. 그 흔적이 공룡발자국과 고래유적, 학과 관련한 것으로 정설로 남아 이 땅이 예사로운 곳이 아니라고 웅변하고 있다. 

산업수도라는 반세기 전의 불도저식 개발문화가 역사문화의 도시로 또 다른 변신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해양문화와 북방문화가 만난 인류문화의 원형은 태화강을 따라 7,000년을 흐른 끈끈함이 뿌리다. 그 뿌리를 바탕으로 일으킨 산업수도 울산이 조국근대화 반세기의 유물이지만 이제 그 탈바가지를 벗고 역사문화의 도시라는 옛것을 찾아 입었다. 불과 한 세기도 안되는 시간 동안 강물은 더럽혀졌고 찬란했던 문화도 범벅이 됐다. 아차 싶어 시작한 강의 복원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강이 정화되고 생태환경이 살아나자 그 길 위에 역사와 문화가 찾아들었다. 강심에서 가장자리로 헤엄치던 울산의 역사는 이제 강 전체를 품고 7,000년 울산의 역사를 되살아나게 하고 있다. 이제 누가 울산에 와도 산업수도만이 울산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울산은 지금 한반도 선사문화의 1번지로 오랜 역사와 문화의 고장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울산이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수로 깃발을 휘날리던 시절, 개발의 첫 삽은 해안이었다. 풍수지리로 볼 때 울산의 해안은 울산에 풍요를 가져다줄 충분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바로 구룡반취(九龍盤聚)의 지세가 이를 웅변한다. 울산은 전형적인 용의 기운을 가진 땅이다. 동해안과 접해 있는 울산은 함월산을 주산으로 무룡산과 문수산을 청룡과 백호로 거느린 명당이다. 풍수 전문가들에 따르면 울산은 태백산맥이 남진하는 중에 험한 기를 벗어 버리고 천연의 요새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청도 운문산으로 내려온 태백산맥이 한 줄기는 경주의 금오산을 만들고 남쪽으로 내려와 울산의 주산인 함월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무룡산은 울산의 좌청룡으로 천연의 항구인 울산만을 만들었고 운문산에서 정족산을 거쳐 문수산으로 이어진 맥은 울산의 백호가 되어 태화강 남쪽에서 울산을 감싸고 있다. 

구룡반취는 아홉 마리 용이 주안상을 차려놓고 모여드는 모습이다. 해안가 울산공단은 청룡과 백호가 여러 겹으로 감싼 채 금빛 소반에 음식을 가득 차려놓은 모습이고 앞은 시원하게 터져 미래를 향한 기상을 엿볼 수 있는 땅이다. 그 용의 중심이 함월이었고 함월의 산세가 재화를 벌어들여 발복이 조선과 자동차산업으로 일어나 엔진 소리로 진동했다. 함월의 기운이 살아 있는 시간 동안 울산은 성장세로 직진하며 수출강국의 고동소리를 요란하게 내뱉었다. 그러다 잘나가던 시절 생각 없는 이들이 주산인 함월의 머리를 헐어버리자 사정이 달라졌다. 주산의 머리가 잘리자 재복의 기운이 기간산업에서 부동산으로 변질됐다. 나라를 먹여 살릴 지세가 사사로운 개인의 재물취득의 땅으로 타락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함월의 기운이 쇠하면서 생겨난 주산의 변화다. 원론적으로 울산은 태화강을 기준으로 남서쪽과 동북쪽의 기운이 양분됐다. 함월을 주산으로 태화강을 돌아 돋질산까지 뻗은 남서 방향의 지세와 함월의 기운을 쫓아 무룡산에서 용틀임을 한 동북의 기세는 용호상박의 지세를 뽐내는 형국이다. 그 기운이 상승의 경쟁체제가 돼 조선과 자동차, 그리고 석유화학과 비철단지가 시너지 효과를 보고 개발과 성장의 주도한 모습이 근대 울산의 과거였다. 하지만 함월의 맥이 힘을 잃은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울산의 주산은 태백정맥의 기준이 응집된 문수산으로 옮겨갔고 문수는 요란함보다 온화함을 바탕으로 인문의 에너지를 발현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시점에 울산의 먹거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는 점이다. 바로 문화다. 반세기 전 조국 근대화를 외치며 삽질을 시작한 이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지금 울산에서 벌어지고 있다. 태화강의 재발견이다. 제방을 쌓고 물길을 막아 돈 되는 일에 욕망을 쏟아부을 생각으로 가득했던 강이 7,000년 세월을 거슬러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제 태화강을 다시 한번 바라보자. 울산의 지형은 태평양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양기를 오롯이 품는 구조다. 이는 형산강 구조대로 지반이 강하게 형성되어 분지형을 이루며, 풍수지리 양기명당(陽基明堂)의 이상적 자세다. 서북쪽으로 고헌산과 가지산, 신불산, 간월산, 치술령, 연화산 등이 둘러싸고 동으로 무룡산, 북으로 함월산, 서북으로 문수산, 남으로 신선산이 에워싼 절묘한 지형이다. 100리로 알려진 태화강 41.5㎞는 가지산에서 발원하여 삼산을 퍼질러 울산 땅 가장자리를 한 바퀴 휘돌아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 

과거 태화강의 중심부인 태화루로부터 지금의 배달의 다리에 이르는 굴곡형 지세는 주산 함월의 기운이 옹골차게 맺힌 지대다. 그 중심에 동헌을 두고 울산관아가 형성된 것도 풍수지리와 무관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구도심에 관아와 양택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 울산 시청이 여기에 위치했다가 신정동으로 옮기면서 첫 번째 지세의 변화가 있었고 함월의 머리를 잘라 택지를 만들면서 두 번째 지세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울산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이다. 대한민국 두 번째 국가정원이지만 강변을 정원으로 만든 대역사는 울산이 유일하다. 놀라운 것은 또 있다. 태화강은 그냥 물길이 아니다. 이 물길 윗자락에 인류사의 시발점이 있다. 반구대암각화다. 태화강이 세상 어떤 강과 견주어 범접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강의 출발지점에 생생한 인류사의 시작이 기록돼 있고 한민족의 이동경로가 새겨져 있다. 지난 1971년 반구대암각화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이 암각화의 역사성과 상징성, 예술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연구해 왔다. 학자들의 연구성과는 해를 거듭할수록 반구대암각화의 놀라운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바로 그 지점이다. 태화강국가정원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영욕의 역사를 함께한 개발과 복원의 스토리가 하나고, 인류문화의 원형 반구대암각화가 다른 하나다. 두가지 관전포인트는 태화강만이 가진 인류문화의 유일한 자산이다. 지금 울산박물관에서 코미디처럼 연결한 코아와 반구대암각화의 스토리나 깃발 아래 모여드는 무지몽매한 운동가들의 감성적 반구대암각화 살리기에서 간과한 위대한 이야기가 핵심이다. 개발과 복원의 영욕이 인류문화의 원형의 발견과 보존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스토리가 이 강에 흐르고 있다. 그 물줄기를 제대로 살려야 태화강국가정원은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이 아니라 인류의 정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 담대한 도전이 이제 울산에서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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