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相生)과 상극(相剋)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 울산신문
  • 승인 2019.10.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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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록 철학원 원장

만물은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작용을 통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발전해 나간다.

상생(相生이)란 어느 한 오행(五行)이 다른 한 오행(五行을)을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명리학(命理學)에서는 오행을 목화토금수로 분류를 하며, 그 흐름을 살펴보면,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으로 흘러갈 때 이를 상생(相生)이라고 한다.

자연의 원리로 살펴보면 나무는 불을 지피고(木生火), 타버린 나무는 다시 흙이 되고(火生土), 흙 속에서 단단한 금이 나고(土生金), 단단한 바위에서 물이 나고(金生水), 물은 다시 나무를 키운다(水生木)는 이치이다. 이러한 선순환을 통해서 만물은 자라고 많은 생명체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한다.

상극(相剋)이란 어느 한 오행(五行)이 다른 한 오행(五行)을 극(剋)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상생(相生)의 흐름과는 다르게 목토수화금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흘러간다. 이를 자연의 이치로 풀어보면 나무는 흙을 극하고(木剋土), 흙은 물을 극하고(土剋水), 물은 불을 끄고(水剋火), 불은 쇠를 녹이고(火剋金), 쇠는 나무를 자른다(金剋木).

흔히 상생이면 좋고 상극이면 나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생(生)이 과다하면 상극(相剋)으로 변하기도 하고 반대로 상극(相剋) 속에서도 상생(相生)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 오행의 세계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법이다. 예를 들면 나무(木)가 불(火)을 생(生) 하지만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많은 나무를 한꺼번에 넣어 버리면 불은 꺼져 버린다. 이를 목다화식(木多火熄)이라 하며 생(生)이 과다해서 오히려 극(剋)으로 변하는 이치이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많은 나무가 불을 끄는 상황을 막으려면 금으로 나무를 잘게 잘라서 넣으면 된다. 이를 금극목(金剋木) 또는 벽갑인정(劈甲引丁)이라고 한다. 

반대로 상극(相剋)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무는 흙을 극하지만(木剋土), 나무는 흙이 있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고, 흙의 입장에서는 나무가 있어야 홍수가 났을 때 물에 쓸려 내려 가지 않는다. 이때는 목극토가 목극생이 된다. 이것이 바로 극(剋)하는 가운데 생(生)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는 의미의 극중생(剋中生)의 원리이다. 이처럼 생(生)이 과다하면 오히려 극(剋)이 되기도 하고, 상극(相剋) 속에서도 상생(相生)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

주역의 천지비(天地否)괘 구오효사에 其亡其亡(기망 기망)이라야 繫于苞桑(계우포상)이라는 문구가 있다. "혹시 망하지나 않을까 하고 항상 염려해야만 굳건한 뽕나무에 메어 놓은 것처럼 안정된다"는 의미로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르고 일이 순조로울 때도 쇠락의 씨앗이 있기에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하고, 반대로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처럼 세상살이에도 음양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의 삶에서 힘이 들 때를 음(陰)이라고 한다면 일이 순조로울 때를 양(陽)이라고 할 수 있다. 음(陰)이 극(剋)에 달하면 반드시 양(陽)으로 변하고 양(陽)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음(陰)으로 변한다.

한 번은 음(陰) 하고 한 번은 양(陽)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이것을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음양의 논리가 무색하게 극과극으로 치닫는 구조로 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끝까지 극과극으로 치달으면 후회만 남는다. 이를 주역에서는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한다. 나아가고(陽) 물러나는(陰) 이치 속에서 중용(中庸)의 도(道)가 유유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