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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추천이 들어왔다. 오래전에 손을 놓았던 미용 일을 다시 시작하려니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변화된 생활이 활력이 되었을까. 그동안 잠재돼 있던 감각들이 살아나면서 일에 재미가 붙었다. 종일 서 있어도 지칠 줄 몰랐다. 

컷 하나에 분위기가 바뀌고, 염색, 코팅으로 얼굴 톤이 부드러워진 고객을 대할 때면 마술을 부린 듯 기분이 좋았다.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땀에 절어 쉰내 나는 머리카락을 만져도 싫지 않았고, 등에 난 혹 때문에 스타일 바꾸는 건 물론이고 샴푸 하기가 쉽지 않은 아주머니에게도 피붙이처럼 살갑게 굴었다.

고객 만족이 나의 행복인 양 즐겁게 보내는 나날도 잠시, 마음의 상처를 연거푸 입은 날이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천층만층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남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일은 더 그렇다. 어느 분야보다 예민한 직업이라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일손이 바쁘다 보면 내 중심에서 손님을 대할 때가 더러 생긴다.  

중화제 도포해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난 손님의 머리가 신경 쓰였다. 하는 수 없이 긴 머리 샴푸를 마친 여중생더러 셀프 드라이를 부탁했다가 멘탈 붕괴에 빠졌다. 여중생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턱짓으로 "내가 왜 해야 하는데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얼떨결에 다른 손님도 바쁠 땐 도와준다고 말하자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어린 학생이 그것도 여자아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받아넘기는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몸담은 미용실은 다른 업소에 비해 요금이 턱없이 싸다. 박리다매식으로 영업을 하다 보니 자연히 알뜰한 손님이 몰리기 마련이다. 예약하고 찾아온 손님들조차 한두 시간 기다리긴 예사다. 저절로 서비스 질이 낮아지고 파마나 중화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염색이나 탈색은 방치할수록 손상 정도가 심각해지고 원하는 컬러가 나오지 않는다. 여중생이 자신의 긴 머리칼을 직접 말려준다면 그사이에 중화제를 도포하고 탈색제를 발라놓은 머리도 살필 수 있다. 서로 간의 시간을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오산이었다. 손님은 손님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싶었던 거다. 하는 수 없이 사과의 말은 했지만 마무리는 한참 뒤에야 지을 수 있었다.  

고객과의 관계가 갑과 을로 바뀔 때가 많다. 중학생 남자아이의 투블럭 컷이 완성되어갈 무렵이었다. 앞머리 길이를 더 잘라 달라고 했다. 눈썹이 보일 정도가 좋겠다기에 조금 더 손을 댔다. 그러자 이번에는 너무 짧아졌다고 투덜댔다. 미세한 차이에도 민감한 연령대라 적당히 달래서 집으로 보냈다. 두어 시간 후 그 학생이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컷 특유의 정수리 머리가 뭉텅뭉텅 잘려져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물었더니 "아줌마가 그랬잖아요." 맙소사, 내 탓이란다. 거듭거듭 물어도 내가 잘라준 그대로라고 말하는데 심장이 뛰어 환장할 노릇이었다.

잠시 후 남자인 점주가 학생을 불러다 몇 차례 진지하게 되묻자 그제야 집에서 할아버지가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긴 머리를 싫어하는 할아버지나 유행을 따라가고픈 학생이나 두 사람 다 이해는 되지만, 눈빛,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내게 덤터기를 씌운 학생의 태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단순히 성장 과정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나 당돌하고 공격적이었다. 머리로는 사춘기를 겪는 학생이라며 이해를 했지만, 마음속에는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되나 보다. 중간 어른들에게 걱정을 보낼 무렵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 한 분을 통해서 다시 힘을 얻었다. 사람도 익어야 맛을 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간단한 커트에 샴푸만 해주었을 뿐인데 손까지 잡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도 부탁해요" 거슬러 받은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 손에 꼬옥 쥐여 주며 커피 한잔 마시라는데, 느린 걸음으로 돌아서는 할머니를 보자 가슴이 찡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 때문일까. 중학생들의 말투에 비위 상하고, 거짓말에 정색했던 화가 스르르 가라앉아 있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를 달고 살기 마련이다. 더구나 사춘기는 신체적으로 이차 성장이 나타나는 시기다. 심신이 극변하고 자아가 성장하는 시기인 만큼 반항심도 빈번하게 표출된다. 성인이 되기 위한 심리전을 겪다 보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하리라.

몸만 성인이지 정신적으로 무르익지 못한 아이들이다. 아직 덜 익은 풋사과처럼 제 빛깔 제 크기를 갖추지 못한 중간 어른이 아닌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문제에 민감하다 보니 더러 전투적으로 보이기도 하겠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 날을 세우고, 거짓말로 자신을 속일 때도 있지만, 뒤늦게 미안함을 느끼는 천진함이 저 아이들에게 숨어 있지 않을까. 

머리카락 색깔을 바꾸듯 감정도 쉽게 바뀌는 게 사춘기 아이들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과도기를 겪다 보니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이 들쑥날쑥할 뿐, 본래의 가치관이 이탈하는 시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좌충우돌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 대하는 시선이 한 뼘은 자라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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