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따뜻함을 실어 나를 수 있을까
버스는 따뜻함을 실어 나를 수 있을까
  • 울산신문
  • 승인 2019.11.05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경영 북토크쇼 꽃자리 대표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필자는 버스 안에서 눈살 찌푸리는 광경을 목격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는 구두를 신은 채 여러 시간을 돌아다녀 몹시도 피곤한 채로 버스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남은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서 있는 사람들로 버스 안이 혼잡했다. 나는 버스 중간쯤, 하차하는 문 근처에서 피곤한 발을 의식하며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서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자리엔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앉아 있었고 그 앞 좌석에는 그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 어르신과 동생인 듯한 아이가 함께 앉아있었다. 버스가 달리다가 멈춘 한 정거장에서 어르신 한 분이 탑승했다. 그리곤 마침 그 두 좌석 사이쯤에 서 계셨다. 좌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그 노인을 의식했던지 뒷좌석 손자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서 일어나라! 여기 할머니 앉으실 수 있게" 그런데 이 꼬마가 들은 체를 안 한다. 듣고도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얼른 일어나! 여기 할머니께 양보해야지" 그러자 서 계시던 할머니가 꼬마 대신 얼른 답을 한다. "아니다 얘야, 그냥 앉아 있어. 괜찮아" 그러자 꼬마가 그제서야 자신의 할머니한테 대답을 한다. "아니야, 안 일어나도 괜찮아" 그러더니 계속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할머니는 다른 수를 쓴다. "이제 내린다. 어서 일어나!" 그래도 아이는 가만히 앉아있다. "어서! 이제 곧 내린다. 이리 와!" 그때서야 겨우 꼬마가 일어나 앞 좌석 할머니 옆으로 가서 선다. 그러자 서 있던 그 노인은 비워진 좌석에 조심스레 다가가 앉았다. 꼬마의 태도를 보면서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이 참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루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앉아있었는데 마침 어르신이 버스에 오르더니 그 학생이 앉은 자리 옆에 섰다. 학생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휴대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또 그 뒤의 학생은 어르신이 탄 걸 봤으면서도 창밖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대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좌석을 양보하는 사람들은 중년의 아주머니나 같은 또래의 노인이다. 학생들의 무심한 태도에 나 자신도 반성해본다. 물론 가끔은 자리를 양보하는 철든 학생들도 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을 보고 다짜고짜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학생! 내 좀 여기 앉자. 니 좀 일어나라!" 어찌나 직설적이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지 옆에 서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학생의 무안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학생은 자리를 양보하고도 기분이 찜찜했을 것이다. 

지난겨울의 일이다. 감기에 걸린 채 버스를 타고 버스 맨 뒤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서 갈 때였다. 서 있던 한 노인이 내 옆자리가 나자 얼른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그러더니 겨울 찬바람이 쌩쌩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손을 뻗어 창문을 열어젖히는 것이었다. 감기에 걸린 나는 기침이 자꾸 나, 슬며시 문을 닫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나를 째려보는 것이었다. "덥다! 문 좀 열자!" 반말을 하면서 눈을 부라렸다. "제가 감기에 걸려서요" 그랬더니 궁시렁 거리면서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못 들은 체했다. 그러더니 반대편 자리로 가 그쪽 창문을 열어젖혔다. 창문께에 앉았던 분이 자리를 피하면서 그 노인께 자리를 양보하고 중간쯤으로 나와 앉았다. 그녀는 노인이 내게 퍼붓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직접 부딪히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인 듯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랴!'

또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두어 정거장이면 내릴 차례인지라 하차 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 하차 벨이 울리자 버스 문이 열리고 한 남성분이 내렸다. 그리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한 노인이 늦게 일어나 나오며 나를 꼬집듯이 홱 밀치는 것이었다. "비키라! 왜 길을 막고 있노!" 내가 당황한 채로 옆으로 비켜서는 순간 버스 문이 닫혔다. "내린다!" 날카로운 고음의 소리로 비명을 지르듯 하는데 나는 도와줄 마음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어쨌든 버스 기사는 다시금 문을 열었고 그 노인은 또 뭐라고 투덜거리면서 내려섰다. 보아하니 아까 버스 뒤쪽에서 눈이 마주쳤던 아주 고약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우락부락한 표정에 노려보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뭔지 모르게 느낌이 안 좋았다. 어쨌거나 저렇게 심술궂게 늙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쑥 올라왔다.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한 시민이 기사를 향해 묻는다. "기사님! 이 버스 *** 가는 것 맞아요?" "이보시오! 여기서 타면 죄다 그쪽으로 가요. 그런 걸 뭘 물어보고 그라요!" 기사는 크게 화를 내며 성질을 부린다. 결국 그 시민은 얼마나 무안했던지 버스 탈 생각을 못 하고 얼어붙었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수많은 일을 목격한다. 버스 기사의 불친절함은 말할 것도 없고 탑승객의 불손한 태도, 그리고 사람들의 성숙하지 못한 말투들까지.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물론 가끔은 친절한 기사분과 성숙한 태도를 지닌 시민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여러 불쾌한 일들을 겪고 나면 사람들의 말들이 왜 그렇게 거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내뱉는다는 것은 세련되지 못한 행동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글귀가 생각이 난다.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존중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타인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진정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타인에게 하는 말부터 다듬어보자. 입 밖으로 내뱉는 말에 마음의 온기를 더하자! 사회가 힘들고 어려워질수록 우리에게는 마음을 데울 수 있는 따뜻한 태도와 말들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작은 온기들로 소소한 일상을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