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선] 시인과 귀뚜라미
[시인의 詩선] 시인과 귀뚜라미
  • 울산신문
  • 승인 2019.11.0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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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귀뚜라미 

정일남

귀뚜라미와 시인이 어느 두메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가을밤 귀뚜라미와 시인은 서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달이 밝고 뜰에 낙엽 떨어지는 분위기면
좋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귀뚜라미는 손질한 악기를 등에 메고
시인의 오두막을 방문했습니다
달이 밝고 뜰에 꽃잎도 지는 밤
귀뚜라미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시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밤새워 기다려도 낙엽만 쌓일 뿐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귀뚜라미는 전화벨만 울리며 떠돌았습니다

△정일남: 1935년 강원도 삼척 출생. 197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1980년 '현대문학' 시로 등단. 시집 '어느 갱 속에서' '들풀의 저항' '기차가 해변으로 간다' '야윈 손이 낙엽을 줍네' '추일풍경' '유배지로 가는 길' '꿈의 노래' '훈장' '유배지'. 시조집 '봄들에서' 등이 있다.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여름 내내 반딧불이와 같이 놀았지만 이제는 귀뚜라미와 밤을 지새우는 가을이다. 올해처럼 무자비한 태풍의 공격을 받아 텃밭이 엉망이 되어 넋을 잃은 날도 많았지만 지금은 별이 되어 하늘로 떠난 반딧불이 노닐던 자리에 귀뚜라미라도 찾아와 빈자리를 메워 주니 외롭지 않는 가을이다.
귀뚜라미는 인가 주위에서 살며 초원이나 정원의 돌 밑에서 볼 수 있다. 야행성이며 잡식성이다. 산란관을 땅 속에 꽂고 산란한다. 알 상태로 땅 속에서 월동한다. 연 1회, 8월 중순에서 10월말까지 나타난다. 아시아 대륙 남부 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수컷이 울음을 터뜨리는데 귀뚜라미도 수컷이 운다.


귀뚜라미가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귀뚜라미는 짝을 찾을 때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고, 적이 나타나면 짧은소리를 낸다. 귀뚜라미는 날개를 이용해서 소리를 내고 귀가 앞다리에 있다. 귀뚜라미는 알을 낳을 때는 산란관을 흙 속에 넣고 알을 낳은 뒤 흙을 덮어준다. 가을에 알을 낳고 겨울이 지나 봄에 새끼 귀뚜라미가 나오고 점점 자라면서 날개가 생긴다.
사람들은 귀뚜라미가 운다고 하거나 노래를 한다는 둥 표현의 방법도 가지가지지만 소음공해 속에서도 변치 않고 울어주는 곤충들이 있는 이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믿고 싶고 계절마다 울어주는 미물들의 삶에서도 인간이 배워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저 곤충들의 울음이 시끄럽게 들리지는 않으리라. 정일남 시인은 귀뚜라미가 전화벨만 울리며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이참에 전화벨 소리를 귀뚜라미 울음으로 바꾸어 볼거나. 박성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