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진경(辟邪進慶) - 그 많던 처용은 다 어디로 갔나
벽사진경(辟邪進慶) - 그 많던 처용은 다 어디로 갔나
  • 울산신문
  • 승인 2019.11.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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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사자독해]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지난가을 초입, 국립국악원이 야심 찬 기획 공연에 나섰다. '서울 밝은 달에/밤들이 노니다 들어와/자리를 보니/다리가 넷이도다/둘은 나의 것인데/둘은 누구의 것인고/본래 나의 것이지만/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요'. 처용이 무용극으로 시민들과 만났다. 늦게 귀가한 처용이 안방 문을 열자 아내 옆에 다른 이가 있다. 처용은 노여워하지 않고 이미 아내를 빼앗긴 것을 어쩌겠느냐며 태연히 노래를 부른다. 탐욕스러운 '역신'(疫神·전염병을퍼뜨리는 신)은 처용의 행동에 감복해 처용 얼굴이 보이는 곳에는 다시는 들어오지 않겠노라고 맹세하고 물러난다. 삼국유사의 처용설화가 무용극으로 재탄생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된 처용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국립국악단의 기획 공연이 의미 있는 것은 처용의 코드를 치유로 읽고 있는 문학사나 민속학사의 흐름을 제대로 극에 녹였다는 점이다. 가을 공연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머지않아 울산으로 초청해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올가을 몇 차례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53년째를 맞은 처용문화제도 바람처럼 지나갔다. 53년이나 된 전통의 축제지만 시민들 대다수는 처용문화제가 언제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몇 해 전 반세기를 맞은 처용문화제를 앞두고 거리 퍼레이드 부활이 현실화 된 적이 있다. 공업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퍼레이드에 처용은 하나의 콘텐츠로 시민들과 만났다. 그러다 처용문화제라는 온전한 이름을 얻고 나서 몇 차례 거리 퍼레이드가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사라져버렸다. 그런 퍼레이드가 다시 시작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당시 거리퍼레이드는 처용 반세기의 새로운 정체성 찾기라는 사명감으로 시도됐다. 축제를 준비하던 이들이 처용의 탈바가지를 첫 줄에 세우고 거리로 나선 것은 처용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겠다는 의지였다. 

퍼레이드는 축제의 중심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축제에는 퍼레이드가 있다. 일본의 3대 축제라는 오사카의 텐진마쯔이가 그렇고 리오카니발이나 스페인의 토마토축제가 그렇다. 퍼레이드를 축제의 중심으로 잡는 이유는 무엇보다 참여에 있다. 처용을 중심에 둔 처용문화제가 시민과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통로는 퍼레이드다. 우리 전통의 길놀이와 그 궤를 같이하는 퍼레이드는 처용을 맨 앞에 내세우고 설화로 배회하던 처용의 정신을 시민들의 호흡과 함께 만나게 만드는 일은 의미 있다. 

퍼레이드를 재추진했을 때 많은 이들이 반대했다. 과거식 퍼레이드의 단순한 재현이라면 반대하는 것이 옳다. 문제는 다소 낯설고 우락부락해 보이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처용을 어떻게 거리에 나서게 하느냐에 있다. 탈바가지 하나 씌우고 행렬의 윗자리에서 근엄한 폼을 잡고 있는 처용이라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없다. 

사람들이 변하듯 처용도 변해야 한다. 상징화된 처용은 퍼레이드의 앞자리에 고정돼 있더라도 수많은 처용의 분신들은 거리도 뛰어나와 시민들과 손을 잡고 어깨춤을 추며 처용 모형의 기념 탈바가지도 나눠주며 덩실거려야 한다. 그 융합의 촉매제는 다름 아닌 처용의 정신에 있다. 처용은 '벽사진경'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담고 있다. 사악함을 몰아내고 기쁜 것을 맞아들인다는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한 처용은 천 년 전이든 오늘이든 우리의 삶의 코드에 유용한 상징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처용을 다시 한번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 설화에 등장하는 개운포나 헌강왕이 동해 용을 위해 지은 망해사, 동해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온 처용암을 오늘의 코드로 변환하는 힘은 콘텐츠다. 이는 바로 천 년 전 울산이 가진 문화의 코드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출발이어야 한다. 천 년 전 국제무역항이었던 개운포가 국제 교류의 현장이자 이질적 문화가 혼재했던 다양성의 마당이었던 사실부터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용을 일반화시키지 못했던 것은 과거의 잘못된 해석 때문이다. 

처용을 벽사진경의 상징으로 읽지 않고 종교나 현상에 집착해 편협한 코드로 읽어내는 오류가 본질을 흐린 결과다. 오류는 아류를 낳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무리들이 창궐하자 행정이 경직됐다. 불륜의 코드라느니 무당과 미신의 코드라느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가 귀를 가지럽히자 단체장들도 몸을 사렸다. 그런 세월이 지나며 처용은 장롱 속으로 창고 속으로 숨어드는 곡절을 빚었다. 우짜다가 이렇게 쪼그라들었는지 화들짝 놀라고 싶지만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처용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대표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다 보니 축제의 정체성이 흔들린 결과다. 누굴 탓하겠냐만 가만히 있으려니 참담해진다.

몇 해 전 학술제에서는 처용이 신라 헌강왕대 울산지역 정치 지도자 역할을 했던 무당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된 적이 있다. 너무 나간 이야기지만 그래도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륜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이의 주장에는 고개의 끄덕임이 더 요란해지기도 했다. 유명한 교수의 말이니 그럴듯했던 것일까. 참으로 딱한 일이다. 

처용을 관용의 코드로 읽는 것은 벽사진경의 상징성이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역신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위험지수이고 그 경계의 방법이 춤사위로 이어진 것은 궁중의 액막이 형태로 계승됐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역신에 대한 필사적인 저항이거나 배척이 아니라 관용의 코드로 다스린 치유의 힘이다. 이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바로 다양성에 대한 수용의 코드로 읽힌다. 

오늘날 다문화사회가 열리고 혼재한 문화가 하나로 어울리는 시대가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다양성의 혼재, 수용의 미학을 축제로 녹여내는 일이 처용문화제의 방향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처용을 다시 거리로 나서게 하는 일이다. 벽사진경의 본래적 의미를 되돌려 거리에서 만나는 처용, 가게나 집에서 만나는 처용의 상징물에 올곧은 정신을 담아내는 일이다. 역신을 즐겁게 만들어 횡액을 예방하는 상징물은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할 과제다. 

세계 유명 축제들이 그 상징의 코드로 맥주를 뿌리거나 토마토를 던지는 행위를 시작한 것은 오늘이 아니라 오래전의 한 사람이 생각해낸 도구였다. 세계적인 축제가 시작부터 유명세를 탄 것이 아니듯 지역 축제가 전국화되고 세계화되는 것은 지역민들의 꾸준한 노력과 지역의 특화된 가치를 버리지 않는 애정에서 출발한다. 

처용의 코드는 치유다. 왕실과 친한 처용이 서라벌 홍등가에서 질펀하게 취한 채 휘청거리며 돌아간 제집 안방에서 만난 것은 바람난 아내가 아니라 그 아내의 이불 속을 파고든 부정의 기운이었다. 그 부정은 한마을을 돌면 절반은 목숨이 달아나는 천연두이거나 밤을 도와 노략질로 분탕질하는 바다 건너온 왜구일 수도 있다. 역병이든 도적이든 나약한 민중에겐 종말의 저승사자와 같다. 그 무시무시한 상대 앞에 일그러진 일상은 홍등가의 질펀한 분 냄새나 거나한 술기운도 금방 달아나게 만든다. 아뿔싸, 주인 없는 동안 역신이 마을을 장악해 버렸다. 바로 그 먹먹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처용의 춤, 처용의 노래다. 그 관용과 치유의 코드를 거리로 옮겨 시민들과 마주하게 하는 것이 사라진 처용을 되살려내는 일이다. 

일부 학자들이나 종교계의 처용에 대한 과도한 주장은 어쩌면 울산에 대한 그들의 생각의 일단을 드러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연구자도 계승자도 정신도 흔들리는 도시라고 생각한 이들이 울산을 쉽게 본 결과다. 하지만 울산은 그렇게 만만한 도시가 아니다. 처용이 불륜의 상징이 됐다가 무당으로 돌변하고 급기야 우상숭배의 또 다른 상징으로 배척의 대상까지 될 만큼 아무나 툭 건드릴 문화자산이 결코 아니다. 

울산은 북방과 남방으로 흘러든 해양문화와 북방문화가 절묘하게 만나 하나의 문화로 결실을 맺은 엄청난  땅이다. 어디 이 뿐인가. 한반도 첫 국제무역항이자 철기문화의 발원지다. 그만큼 풍부한 문화자산을 갖고 있다. 함부로 설쳐대다가는 정말 역신의 벼락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