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선] 갈대
[시인의 詩선] 갈대
  • 울산신문
  • 승인 2019.11.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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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1936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1960년 동국대학교 영문과 졸업, 1955년 문화예술 '낮달' 등단 수상, 시집으로 '원격지''산읍 기행''시제''농무' 등의 시를 발표했으며 시학(詩學) 해설서인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973년 만해문학상, 1981년 한국문학 작가상, 2009년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했다.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입동 무렵이다. 걷기 좋은 키다리 달이다. 태화강변의 홀로 서 있는 황새의 긴 다리 같기도 한 11월은 가끔 몸을 흔드는 갈대의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따뜻하다. 햇살이 손에 잡힐 듯 살랑바람이 불어오는 강변엔 하늘은 높고 푸르고 뭉게구름도 한가롭게 강을 건너고 있다. 다시 만보를 시작한 지 두어 달이 가까워진다. 가끔 저려오던 무릎과 운전 탓인지 허리 통증이 있었는데 적당한 보폭으로 걷기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자 통증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만보행이 있었다. 잔 근육을 이용하는 백일 만보 걷기 프로젝트는 중간에 다른 일이 끼어들어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시작한 걷기는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동시에 필자를 부지런하게 한다. 아침부터 오늘은 어디로 갈 것인지, 목표를 정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기온이 좀 내려간다고 뉴스에서 말한다.


겨울로 들어서는 입동을 지나며 추워지기 전에 가을을 조금 더 느끼고 싶다. 서둘러 명촌 갈대숲으로 간다. 기온이 살짝 내려갔는지 하늘이 더 높고 파랗다. 살갗에 부딪치는 청량한 알싸함이 있다. 강폭이 넓어질수록 물빛이 맑고 짙은 감청색이 돈다. 강가 낚시터에는 가끔씩 환호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햇볕에 부딪히는 잔물결은 은빛비늘이 움직이는 것 같다. 강에는 물고기들이 튀고 다리 아래 잿빛 황새는 오수를 즐기고 있다. 청둥오리 떼들도 바쁘게 물살을 가르고 하늘에는 갈 까마귀 떼들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태화강변은 자연이 주는 절창의 그림이다.


태화강과 동천강이 마주치는 두물머리에는 삼각주가 있고 다리 건너 끝이 보이지 않는 은빛 잔물결의 갈대숲이 나온다. 갈대숲에서 여기저기 참새들이 포르륵 날아오른다. 숨어있던 언어의 파편들이 집을 지어 제제젝 이야기하다 날아오르는 것 같다. 갈대는 몸을 흔들어 울고 있다는 시인은 여기 오시라! 그들 허리춤에서 몸을 비비며 은밀한 이야기를 듣는 새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리지은 은색 갈대는 솜이불 같다. 바람이 불면 우우 소리를 낸다. 세상살이가 힘이 들 때 갈대밭에서 실컷 울어도 좋겠다. 우리의 삶과 가까운 슬픔과 기쁨, 높고 낮음 그리고 자연의 조화로운 음양의 공존을 가진 최고의 아름다운 곳이 여기다. 한영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