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통일의 발자취를 따라⑷ - 김유신 장군묘(上)
신라통일의 발자취를 따라⑷ - 김유신 장군묘(上)
  • 울산신문
  • 승인 2019.11.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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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이재호 향토사학자의 해설을 인용한다. 김유신 장군묘에서 그의 해설이 시작됐다. 이 잔디가 파랗게 물들었을 때 여기서 보면 경치가 기가 막힙니다. 이런 유물을 보는 방법에 대해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유물을 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밑에서 위로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仰視(앙시)라고 합니다. 배가 조선소에서 처음에 나올 때 그걸 보는 걸 仰舟(앙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물을 위로 올려다보면 일종의 설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스코리아를 심사할 때도 보면 항상 밑에서 올려다보면서 심사를 하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심사를 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과거 히틀러도 이런 방법을 이용했다고 그럽니다. 제가 듣기로 히틀러는 연설할 때 달빛이 훤하게 비추는 밤에는 안 하고 꼭 캄캄한 그믐날 밤에 고가 사다리를 타고 자기 혼자 올라가서 조명을 받으면서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연출한 상황에서 '독일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그러면 군중들은 '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반대로 히틀러가 관중을 내려다보는 식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기법입니다. 이걸 俯瞰法(부감법)이라고도 하는데 일명 헬리콥터 기법입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시각입니다. 석탑과 같은 유물을 이런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좋습니다. 최근 각종 공연을 할 때가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관객이 밑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우러러보는 형식이었는데 이제는 층계 위로 올라가서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면서 공연을 잘하고 있는가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죠. 

참고로 서양에서는 험한 산세와 지형때문에 그에 맞춰 잘 지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건축이 발전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세와 지형이 좋아서 그냥 집 하나 슬쩍 지어도 괜찮으니까 건축이 제대로 발전을 안 한 편입니다. 그냥 대충 지어도 자연과 잘 어울리니까요. 서양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당 같은 게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聖(성) 소피아 성당에 들어가면 그 천장의 높이나 규모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눌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아이고, 회개하겠습니다. 하나님!' 할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그다음에 평지에서 보는 게 평원법입니다. 이건 보통 유물을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이상 위에서 보는 법, 위로 보는 법, 평원법을 잘 사용하신다면 어떤 유물이든지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럼 먼저 제가 김유신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리고 조갑제 선생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김유신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유신은 일단 출신이 안 좋았습니다. 그는 가야의 왕족 출신입니다.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의 증손자인가 그렇게 될 겁니다. 김유신의 아버지는 우리가 아는 金舒玄(김서현)입니다. 

김서현은 김유신의 생가가 있는 충북 진천의 군수였습니다. 그곳 군수로 발령되기 전까지 김유신 일가는 가야의 망한 왕족이기는 했지만 신라의 귀족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골, 진골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김서현은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萬明(만명) 부인과 서로 눈이 맞습니다. 보통 중매결혼은 조건을 봅니다. 그렇죠? 서로 집안과 돈, 잘난 거 못난 거를 보지만 연애는 다릅니다. 둘이 서로 좋아하면 결혼하는 게 가능하죠. 그렇게 김서현과 만명 부인이 서로 좋아하게 됐을 때 만명 부인의 가족들이 말립니다. 그때 만명 부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미쳤냐, 그런 놈하고 니가 친하면 되겠냐'고 말입니다. 왜냐면 출신이 안 맞았기 때문입니다. 만명 부인의 아버지는 결국 만명 부인을 창고에 가둬버렸습니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이때 벼락이 쳐서 창고가 무너지는 바람에 만명 부인이 도망쳐 나왔다는 게 있고 다른 하나는 그때 김서현이 만명 부인을 업고 진천까지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쨌든 거기서 낳은 아들이 바로 김유신입니다. 그래서 김유신의 고향이 진천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