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섬
다비드섬
  • 울산신문
  • 승인 2019.11.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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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 수필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차마 승선할 수 없었다. 그들은 출항을 앞두고 단연 놀랐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평안을 빈다는 눈빛들이었다. 나는 의구심만 가득 남긴 채 그들을 배웅했다. 그들이 돌아오면 함께 떠나지 못한 심정을 고해야 할 의무가 마음 한 켠을 짓눌렀지만 여객선터미널을 나서는 발길이 마냥 가벼웠다. 

한 모임에서 계획한 다비드섬 투어였다. 다비드,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조각상 중 하나이기도 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 다윗을 히브리어로 지칭하는 이름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비드가 어린 목동이었을 때 지중해 해변 블레셋이라는 나라의 거인 골리앗을 물맷돌 한 방으로 쓰러뜨린 일화는 유명하다. 마치 그 섬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막아주어 그나마 우리를 태풍 피해에서 벗어나도록 해준다는 점과 같아 보여 나는 그 섬에 다비드 이름을 따다 붙였다. 

다비드섬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으리라. 다윗 이름만 부르면 그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 섬의 이름만 대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사는 울산에서는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라도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가깝다.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섬, 조금의 경제적 여유와 시간과 마음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다녀올 수 있다. 이제 가보지 않아도 한눈에 훤히 들여다볼 정도로 알려졌지만 직접 다녀오면 자랑스레 얘기하길 즐겨하는 섬. 적어도 내가 아는 지인들은 대부분이 다녀왔으며, 여러 번 다녀오고도 또 가고 싶어 하는 섬, 이젠 섬 같지 않은 섬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그 섬에 가보지 못했다.

내가 다비드섬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진짜냐고 되묻는다. 진짜라고 하면 설마, 하는 눈빛을 보이다가 그것이 믿어지면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거기에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냐고 캐묻는다. 나는 다비드섬에 가보지 못한 것이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언젠가부터 남들 다 하는 일을 혼자 해보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다 괜히 마음을 감추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 섬 이야기를 꺼내면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싶어졌다. 나는 그 섬을 잘 알고 있는 이방인이 되어갔다. 

어느 때부터 이상한 마음이 일었다. 남들이 다 접한 것을 나만 접해보지 못한 특별한 사람이 된 듯했다. 다녀올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며 여러 번 함께 가자는 권유도 받았지만 점점 더 그럴 수 없었다. 진흙 속의 진주처럼, 어느 누구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나만의 섬으로 오롯이 취하고 싶어 늘 마음에 넣어두고 이제나저제나 밀회할 날을 기다렸다. 다비드섬은 내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섬이 아니라 환상의 섬, 꿈의 섬이 되었고 만남을 기다리며 사는 것에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실제 아무렇지도 않게 떠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다. 우리 모임에서도 역시 그랬다. 그 섬에 대한 나의 내밀한 사연을 드러낸 것은 실수였다. 내가 그 누구하고도 먼저 그 섬에 가지 못하도록 내쳐 나와 함께 다비드섬으로 가야겠다는 우스갯말이 나왔다. 내 속에 숨겨둔 특별한 보물인 양 함께 나누어 가지자는 것이었다. 

내가 웃음으로 갈무리하자 그들도 허투루 넘어가는 모양새였다. 몇 주가 지났다. 무슨 다비드섬까지 가서 우리의 결속을 다진다는 말인가. 모임의 마무리 차 좋은 음식으로 식사를 하거나 1박 2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며 모임 날짜와 시간이 오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미 다비드섬 행 표가 예매되었다. 그것이 나를 위해서라고 누군가가 귓속말을 해왔다. 

그 순간 내가 그토록 흠모하고 애지중지하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다비드섬이, 살아버릴까 생각했던 섬이, 내 삶이 가장 행복할 때나 혹은 가장 슬퍼졌을 때 도피처처럼 남겨두었던 섬이 그만 허공 속에 가라앉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결코 나 자신에게만큼은 함부로 열어젖히고 싶지 않았던 섬으로 나는 그들을 따라 쉽게 나설 수 없었다. 그저 웃으면서 즐기다 올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나는 어쩌면 다비드섬을 온 마음으로 바라보며 누리고 싶은 꿈에 빠져있었단 말인가. 지극히 평범한 한 섬을 유토피아로 집착하며 그려가고 있었던가. 어쩌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할 섬, 닿을 수 없는 섬 하나를 평생 내 안에 띄운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더라도, 설령 그렇더라도 가슴 한복판에 늘 살아있는 섬, 나의 다비드섬으로 더불어 살고 싶어 나는 그만 배편에 오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