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지시(遼東之豕) - 그에게서 스크루지 그림자가 비친다
요동지시(遼東之豕) - 그에게서 스크루지 그림자가 비친다
  • 울산신문
  • 승인 2019.12.0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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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사자독해]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지독한 구두쇠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린고비를 떠올리지만 서양에서는 스크루지가 교훈적 의미로 통용된다. 느닷없이 웬 구두쇠 이야기냐 싶지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때문에 나온 말이다. 트럼프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한국이 안보 구두쇠가 되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1조가 넘는 돈을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내주고도 안보 구두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게 오늘의 한미동맹이다. 지린고비든 스크루지든 임대료가 밀리면 거칠고 요란해진다. 와부뇌명(瓦釜雷鳴)이다. 질그릇과 솥이 부딪치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 사람들이 천둥 치는 소리로 착각한다. 무뇌아들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부인 양 크게 떠들어대는 것을 빗댄 경구다.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 이 땅에 주둔했다. 해방 직후 좌우 혼란기가 이어지던 시절, 미 군정은 단순한 주둔군이 아니라 점령군처럼 남쪽을 통치했고 우리 현대 정치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주한미군이 결정적인 지위를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한국전쟁 때문이다. 전쟁은 미국에도 엄청난 상처였다. 젊은피들이 낯선 땅, 낯선 곳에서 자유를 위해 산화했고 그 결과 한국과 미국은 혈맹이라는 동지의식으로 굳건한 동맹관계를 이어왔다. 현재 미국은 해외파견 미군 병력 중 독일에 7만 명, 일본에 4만 명에 이어 한국에는 3번째로 많은 2만8,000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가 최근 들어 예민한 현안이 된 것은 무엇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분담금 인상 요구 때문이다. 그는 툭하면 한국의 안보에 미국이 쓸데없이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당장 대선을 앞둔 트럼프는 이 문제를 선거와 연결시켜 한국정부의 굴복을 선거용 홍보물에 인쇄하려고 덤비는 태세다. 결과는 미지수지만 과정은 불편하다. 이 문제로 한미 양국의 실무진은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 체결을 위한 회의를 몇 차례 진행했지만 결렬됐다. 미국 측은 한국이 부담할 분담금을 올해보다 6배 많은 50억 달러(약 6조 원)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설마 하던 분담금 6배 인상이 가시화되자 한국의 여론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의 입을 자처하는 유시민이 깃발을 들었다. 유시민은 그의 개인 방송을 통해 미국 측의 분담금 인상액인 6조 원을 언급하면서 그 내역을 추산했다. 그는 "미국이 산출한 내역이 없어서 우리가 굳이 계산하자면 여기 주둔한 2만8,000명 정도의 미군의 봉급, 가족을 동반한 경우에는 주거비, 가족수당, 아직 정전 체제, 교전 상대방이 있는 지역이니까 위험수당"이라고 열거했다. 그러면서 그는"1인당 2억짜리 용병을 쓰는 건 동맹이 아니다"며 "정 미국이 돈이 없으면 주한미군 규모를 좀 줄이라. 상징적으로 공군만 남겨놓고 지상군은 다 철수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군이 공론화될 공산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문정인 특보도 이같은 흐름에 가세한 상황이다. 그는 한 방송과의 대담에서 "주한미군 병력을 5,000~6,000명 감축한다고 해서 한·미 동맹의 기본 틀이나 대북 군사적 억지력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진행자가 정색하고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묻자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는 "(미국 측이) 한·미 동맹의 판을 깨려고 하면 감축 옵션을 쓸 수도 있겠다"고 답변했다. 

주한 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는 오래된 이슈다. 한국전쟁 직전 미 군정은 500명의 필수요원만 남기고 전쟁 두 달 전 미군 핵심 병력을 모두 철수했다. 이후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후유증에 놀란 미국은 닉슨 독트린이 나오기 전까지 미군 감축 문제는 아예 입에 담지 않았다. 냉전시대 한반도는 동북아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넘어 세계적인 안보틀의 경계로 인식됐다. 그런 까닭에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의 미군 주둔은 전략적인 문제를 넘어 세계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뒷배가 됐다. 그런 주한 미군이 닉슨에 의해 흔들렸다. 닉슨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다. 바로 그 닉슨이 대통령직에 오르자 곧바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의 핵심은 주한미군의 철수였다. 당시 닉슨은 주한미군 7사단과 주한미군 2사단을 모두 철수시키려 했다. 위기를 느낀 쪽은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한국과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위반이라는 성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이러한 여러 차례의 한국의 성명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1970년 7월 5일 7사단을 철수하겠다고 밀어붙였다. 한국군 정예화 없이 미군철수는 불가하다는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저항은 결국 한미 군사 공동성명으로 이어졌고 이때부터 우리 정부는 자체 무기와 탄약의 생산이 가능한 것은 물론 국방과학연구소 창설과 핵무기 개발이라는 박정희 후반기 극비공작이 시작됐다. 당시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주한미군은 7사단에 이어 2사단도 철수됐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당사자인 닉슨이 탄핵 직전 사임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주한미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기억하지만 주한미군을 본격적으로 철수하겠다고 나선 이는 카터였다. 카터는 1976년 11월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아예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 취임 즉시 3단계 주한미군 철수 안을 발표했다. 1982년 7월까지 모든 지상군을 철수하고 유시민의 말처럼 공군과 해군은 계속 주둔하는 안을 공표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완강히 반발했다. 박정희 정부의 반발과 미국 내 친한그룹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카터 역시 전면철수는 접었다. 하지만 미국의 몇 차례 철군 움직임을 숨죽이며 지켜본 북한 지도부는 툭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납북 협상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도 원하는 이야기 아니냐는 꼬리표를 보여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수준이 됐다.

최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막말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몇 달 전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 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얘기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흘렸다고 한다. 해리스 대사는 올 9월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이 회장을 맡은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소속 여야 의원 10여 명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그는 주한미군 분담금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밝혀 '비외교적이다'라는 우려를 산 바 있다. 트럼프의 복심인 그의 발언은 많은 부분을 암시한다. 종북좌파에 둘러싸인 대통령이기에 친북 정책의 기조가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흐름에서 주한미군이 스스로 비용 부담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적 유추가 가능하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친북 정권으로 규정해 미국 내 여론전에서 이득을 보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니 트럼프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트럼프는 얼마 전 선거 유세에서 또다시 '부자나라 방위비 증액론'을 꺼냈다. 그는 "(전임) 지도자들은 위대한 미국의 중산층을 그들의 망상적인 글로벌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기 위한 돼지저금통으로 여겼다"며 "(그런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 걸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지 전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도 선언했다. 이 부분에서 트럼프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주한미군의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주둔해왔다는 사실이다. 닉슨의 후임인 포드가 미군 주둔을 결정한 것이나 카터가 공약으로 밀어붙인 미군철수를 중단한 것은 비용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가진 국익과 대 아시아 전략에 의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 정부가 스스로 핵무장 등 군사적 공룡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런 복잡한 사정을 걷어차고 손익계산서로 주한미군을 바라보는 일은 장사꾼의 단견이다. 식견이 얕고 오만한 자가 높은 자리에 앉으면 내뱉는 말마다 조롱거리가 된다. 요동지시(遼東之豕)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착각은 아무도 그를 세계 대통령이라 인정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세계 대통령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대목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