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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발음하는 괘

김려원

모든 달(月)에는 껍질이 있다
껍질 위에 껍질을 내리치면 텅 빈 소리가 난다
텅 빈 소리를 쫓아온 비도 흩뿌리는 관이 있을 것이고
그 관 안에 줄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

오늘의 오관 떼기에서는
우산을 쓴 손님이 찾아왔다
비는 가장 먼 곳을 달려온 음악,
오동잎을 노래하는 젓가락 장단에
양철봉황새는 들썩이며 춤춘다.

비의 속도라는 말은 타들어가는 저수지와
미처 걷지 못한 빨래가 젖는 시간
그녀의 스커트가 펄럭거렸다, 라는 모란꽃 같은 말

화투장들은 왜 달력이 되지 못할까
날짜가 없는 달이라니,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라서
날짜 없는 매일을 달밤 없이 점친다
내일은 상냥한 국화주를 따를 것이고
님은 글피쯤 벚꽃무늬 봇짐을 싸들고
송학같이 속삭여 올 것이므로

내달의 껍질을 다시 내리치면 한달음에 비
우산 쓴 님이 붓꽃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려원: 1966년 경남 하동 출생. 2017년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

12월 이 해 마무리 시간이 다가옵니다. 마무리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어제는 분홍 장미를 10송이 샀습니다. 가슴에 품어 따뜻함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한 해를 열심히 달려온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또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기도합니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어린 친구들의 가슴에도 보내고 싶고, 새 일자리를 찾은 젊은 친구에게도,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위해 열심히 일한 퇴직자분들께도 분홍 꽃다발을 보내고 싶습니다. 겨울이면 문학계에도 한 해 마무리 하는 축하할 곳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어제는 가까운 지인이 소설로 등단을 하고 그 힘겨운 터널을 벗어나게 되었는데 정작 글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무궁한 발전을 빌며 분홍 꽃다발을 가슴으로 내밉니다.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시간은 빠르게 소나기처럼 속도를 가집니다. 1월의 껍질을 벗기기도 전에 매화가 피고, 이어 목련과 목단 가지에 새소리가 납니다. 오월 오동꽃은 또 얼마나 예쁜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뒤돌아보면 시간은 텅 빈 껍질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시간은 달립니다. 여름 우산을 쓴 지구인은 보름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시인은 묻습니다. 화투장들은 왜 달력이 되지 못할까요. 날짜가 없는 달이라니, 누구나 날짜 없는 매일 앞날을 점치고 싶습니다. 문자로 오는 오늘의 운수는 언제나 나의 앞날을 점치기도 합니다. 오늘은 맑음이네요. 점자로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은 두터운 외투를 입고 나가세요. 오늘은 좀 조심을 해야겠군요. 이런 일상들을 시간이 끌고 갑니다. 시간 속에 내가 있습니다. 나의 껍질 속에 알곡은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도 시간의 흐름을 재고 있습니다. 오늘을 보내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듯이.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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