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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속기어가 5단까지 있는 자동차를 생각해 보자. 변속레버는 언제나 7개의 자리(중립, 후진, 1단, 2단, 3단, 4단, 5단) 중에서 어느 하나의 위치에 있다. 7개의 위치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게 존재하는 사태를 우리는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조차 없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이렇게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조차 없는 사태가 소립자의 세계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확률상태로 동시에 존재


 두 개의 작은 구멍이 있는 칸막이를 생각해 보자. 칸막이를 향해 전자를 쏘면, 전자는 두 개의 구멍 중에서 어느 하나의 구멍을 통과할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하나의 구멍을 통과할 확률이 50%이고, 다른 구멍을 통과할 확률도 50%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확률상태로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의 변속레버가 각각 1/7의 확률로 7개의 위치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각각 50%의 확률로 동시에 지나가지만, 우리가 장비를 사용하여 어느 구멍을 통과하는지 바라보면, 관찰하는 그 행위로 인해 전자는 두 개의 구멍 중 어느 하나의 구멍만을 100%의 확률로 통과하게 된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는 자동차의 변속레버가 각각 1/7의 확률로 7개의 위치에 동시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면 바라보는 그 행위로 인해 변속레버가 7개의 위치 중에서 하나의 위치에 100%의 확률로 존재하게 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이렇듯 관찰행위는 소립자의 불확정적 속성을 확정적 속성으로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런 효과는 실험장치만 잘 마련되면 소립자에서 커다란 물체(책상, 고양이 등)로 확대될 수 있다. 어떤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고양이 앞에 총이 놓여 있다. 총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고양이는 죽는다. 그런데 방아쇠는 전자가 지나가는 구멍과 연결되어 있다. 전자가 그 구멍을 통과하면 방아쇠가 당겨지지만 통과하지 않으면 당겨지지 않는다. 전자 하나가 두 개의 구멍 쪽으로 쏘아졌다면 고양이는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


 고양이는 죽지도 살지도 않은 기이한 상태에 있을 것이다. 전자는 각각 50%의 확률로 그 구멍을 통과했으면서 동시에 통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방아쇠도 각각 50%의 확률로 당겨졌으면서 동시에 당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고양이도 각각 50%의 확률로 죽었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을 것이다. 물론, 죽지도 살지도 않은 이런 기이한 상황을 우리는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게 바로 양자역학으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귀결이다.

 

   확정적 상태로 만드는 관찰


 우리가 상자를 열면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상자를 연다는 것은 우리가 관찰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관찰이란 각각 50%의 확률로 존재하는 두 개의 상태(산 상태와 죽은 상태)를 100%나 0%의 확률로 만들어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어떤 물체가 전자처럼 작건 고양이처럼 크건 간에 관찰행위는 불확정적 상태를 확정적 상태로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독자는 이 글을 읽고 양자역학이 미친 이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느꼈다면 나로서는 다행이다. 이글을 읽은 것이 양자역학을 대체할 새로운 물리학이론을 만들어낼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그런 이론을 만들어낸다면 아인슈타인보다 더 유명해질 것이며 노벨상을 10개는 타고도 남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수십 명의 천재 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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