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아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과거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사죄하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메르켈 총리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은 것은 지난 2005년 총리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사과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06년 이스라엘을 방문해 유대인 희생자에게 참배했다. 

2009년에는 폴란드 그단스크 교외에서 열린 2차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브란트에 이어 독일 정상으로선 두 번째로 무릎을 꿇고 유럽인들에게 사죄했다. 독일의 사죄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지난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에게 속죄했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지난 2001년 8월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는 2차대전 패전 기념일을 이틀 앞두고 전범 14명의 위패가 안치된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 공식 참배했다. 전쟁을 일으켜 5,0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던 양국은 그 시작은 같았어도 사후 대응은 달랐다. 1945년 패전 후 독일이 정상들의 연이은 사죄 표시로 유럽 내 신뢰를 쌓은 반면, 일본은 전쟁범죄를 부인하거나 숨기는 등 후퇴한 역사인식으로 주변국과 갈등을 빚었다.

메르켈 총리의 이번 사죄는 그 장소가 아우슈비츠라는 데 의미가 컸다. 도이체벨레(DW) 등 독일 언론과 AFP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지난 6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재단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았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이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계를 넘은 범죄 앞에서 마음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어떤 말로도 이곳에서 비인격적인 처우를 받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많은 사람의 슬픔을 달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어 "범죄에 대한 기억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책임이다. 이것은 우리 국가와 분리할 수 없다"면서 "책임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국가 정체성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희생자들과 자신에게 부채가 있다"면서 반유대주의를 관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의 안내를 받아 유대인들이 처형당했던 '죽음의 벽'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메르켈 총리는 추운 날씨에도 장갑을 끼지 않았고 스카프도 두르지 않았다.

최근 일본의 만행에 대한 자료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에 관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일본 공문서가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주말 일본 매체인 교도통신이 보도한 내용이다. 

통신은 지난 1938년 작성된 주칭다오(靑島) 일본 총영사의 보고서 내용을 인용, 중국 현지에 진격한 일본군이 병사 70명당 위안부 1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본토 외무성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에 근거해 위안부의 강제모집, 송출 등 관(官)의 개입 사실 자체를 전면 부인해 온 아베 신조 총리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역사적 '증거'가 하나 더 보태진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사의 일환으로 내각관방이 2017∼2018년에 새로 수집한 23건의 문서 중 13건에서 발견된 내용이라니 문건의 신빙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두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인정과 사죄를 할 가능성은 0%다. 오히려 출처가 불분명하다느니 모호한 자료로 일본을 공격한다느니 하는 식의 대응이 나올 것은 뻔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본질 흐리기는 일본의 몰염치와 역사왜곡이 시발점이다. 광기에 가까운 일본의 역사왜곡은 일본에게 부메랑이 됐다. 스스로 왜곡하고 조작하다 보니 억지가 동원됐고 주변국의 분노를 촉발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위안부다. 소녀상이 세계 곳곳에 만들어지고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자 일본의 대응은 더욱 치졸해진 것도 좋은 예다. 일본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인정한다면, 그리고 아베가 나눔의 집을 찾아 살아 시퍼렇게 멍든 가슴 움켜쥔 채 마른 숨 쉬고 있는 할머니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사죄와 반성이 맞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무릎 꿇는 순간, 교과서나 독도, 심지어 임나일본부까지 떠벌려 왔던 모든 과거가 치욕으로 돌아온다고 인식하고 있다. 가능한 위안부의 산증인들이 임종의 순간을 맞을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는 치졸한 믿음 하나를 틀어쥐고 있는 모양이다. 

아베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가진 공통의 역사인식이다. 일본은 직접적인 원죄가 없고 관여하지도 않았지만 우는 아이 떡 쥐여주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대국의 도량을 다 했다는 것이 일본 정치인들의 인식이다. 분명한 것은 위안부 재단이나 어떤 흥정이라 해도 우리국민들 대다수는 일본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용서의 절차는 오로지 일본 정치인들의 진정어린 사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메르켈 총리로부터 배워야 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