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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우리는 달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어도 마음으로는 달을 보았고, 소망도 빌었다. 또 여신과 대지를 상징하는 달의 기운에 비춰 이날의 봄비는 오히려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여신의 축복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겨울가뭄에 시달렸던 식물들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단비였다. 유지수 부족으로 누치의 폐사가 줄을 이었던 태화강에도 생명력이 되살아나게 했다. 정월 보름달을 보지는 못해도 마음 한편으로는 감사해야 할 봄비였다.
이제 얼마 있으면 이곳저곳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초록의 물결을 몰고 올 봄이다. 우리가 대보름날, 오곡밥과 함께 묵은 나물과 복쌈을 먹는 것 역시 봄을 맞이하는 데 있어 경건함을 내포하고 있다. 새 생명의 잉태를 기다리기에 앞서 묵은 생명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갈무리를 하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으로 믿은 우리 선조들의 미덕이다. 대보름날 행사로 빼놓을 수 없는 줄다리기도 그 근원을 짚어보면 내기놀이라기 보다 다산과 풍년을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에서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내기에서 암줄편인 여성편이 이겨야 대지에 풍년이 든다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정월대보름날의 단비는 이래서 아쉬움보다는 축복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