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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인터넷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읽었다. '아이 아버지인 나를 새끼라 불러요'였다.

 

   한국에서 자신의 처지 하소연


 글을 읽어가는 중 그 이야기는 어느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임을 알았다. 월급도 주지 않는 사장님인데도 그는 사장님은 좋은데, 부장님이 자기를 '새끼'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이 아빠인 자기를 '새끼'라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있지만 막상 도와주는 기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만해도 그들에게는 작지만 조금의 위안이 되는지 상담센터에 와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한다고 한다. 우리가 기피하는 그 많은 일자리를 메워가는 동남아시아인들.


 '미수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온 아가씨가 자기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간다고 하니 '그 위험하고 못사는 나라를 왜 가느냐? 중국이나 일본을 가지'했다는 것이다. 자기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막상 도착한 한국은 무지 잘사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6.25 당시 우리에게 파병했던 에티오피아인들은 당시의 우리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아왔는지 불과 몇 십년 전 일일 것이다. 그러한 몇 십년동안의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수많은 일자리가 이제는 우리가 터부시하고 기피하는 일자리가 되어 그 자리를 채우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길에서도 자주 만나게 된 것이다.


 유학시절 유럽에는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동아시아인들이 아주 많았다. 하루는 남편이 파키스탄 청년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유인 즉 그가 길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그의 물건을 하나 사게 되었고, 가만 보니 그의 체격이 자기와 비슷해 입지 않는 자기의 옷을 주려고 집으로 초대했던 것이다.
 갑작스런 손님에 나는 3인분의 점심을 준비했고 이런 저런 대화중에 그들이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과 그가 대학 출신의 엘리트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얼굴에서 마치 몇 십년 전 우리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갔던 이민자들과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우리의 힘들었던 과거를 보는듯한 느낌 그런 것이었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그들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민 1세대의 모습이라면 '새끼'라는 간단한 표현으로 그들을 부를 수 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 부장님의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할아버지 그들이 외국에서 그런 취급을 받는 다고 생각하면 당장 그런 태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했다. 길에서 마주치면 일부러 불러 세워 인사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눈이 마주치면 먼저 눈길을 거두지 말고 미소를 한 번 지어 주자고. 그들과 마주친 우리의 시선을 차갑게 먼저 거두기보다는 미소를 한 번 지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열심히 사는 그들에게 따뜻히 대해줘야


 우리의 한 번의 미소가 그들에게 체불한 임금 대신일 수도 없고 나쁜 호칭을 삭혀 줄 수는 없어도 그 날 하루의 기분을 좋게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리라. 모르는 이에게 미소를 짓는 일이 우리 국민에게는 쉽지 않고 어색한 일이지만 멀리 타국에 와 있는 그들에게는 우리의 차가운 시선이 부장님의 '새끼'라는 호칭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2007년 이래 이미 100만의 외국인을 가진 나라의 국민답게 따뜻함도 기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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