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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울산시 고위간부와 대화를 나누다 공직자의 인식이 도시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가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다. 대화의 내용은 옥동 군부대부지의 활용문제였는데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옥동 군부대부지는 울산에서 몇 안 되는 미활용부지로 도심권의 중심에 위치해 활용분야에 따라 그 가치가 어떻게 변할지 주목되는 곳이다. 하지만 울산시는 아직까지 이 부지를 어떤 용도로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고 여론과 전문가의 의견, 시 자체 활용안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이곳을 공공청사로 지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공원화해 시민들의 휴식처로 돌려주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문제를 두고 시 고위간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안을 이야기하다 시립도서관 건립 문제가 나오자 그 간부는 "그 아까운 땅에 한물 간 도서관을 짓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정색을 했다. 각 구청별로 도서관이 있고 이미 IT시대가 일반화된 마당에 종이책을 위주로 한 도서관이 무슨 말이냐는 말이었다. 시립도서관을 군부대에 짓자는 문제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간부의 말은 영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울산시의 정책 결정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직자의 인식은 울산의 미래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물론 민선 시장의 최종판단이 일부 간부들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기능을 하고 있지만 구태의연하고 독단적인 사고의 틀로 시정을 추진한다면 그 불행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 된다는 이야기다. 시립도서관 건립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오늘의 시대가 과연 종이책의 몰락과 전자책의 활성화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부터 따져볼 일이다. 특히 그의 말대로 도서관이 한물 간 시설이라면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왜 여전히 공공도서관 건립과 그 유지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여름 서울에 들렀다가 경복궁 내에 있는 민속박물관을 찾은 일이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대학 동창과 만나기 위해 들린 것이지만 동창과 만나는 목적보다 달라진 민속박물관의 내용에 더 호기심을 느꼈다. 민속박물관은 이미 우리나라 민속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진행해 이를 자료관으로 구축하고 국립박물관은 물론 국립도서관과 각 지역 도서관은 물론 대학과 연계한 자료 공유를 시행하고 있었다. 동창의 이야기로는 이같은 데이터베이스화가 가장 늦은 분야가 바로 박물관이나 도서관이며 목록을 정보화하는 수준을 넘어 전반적인 내용을 데이터화 하는 작업이 전분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에 모범이 될 만한 곳이 지난 봄 문을 연 국립 디지털 도서관이다. '디브러리(Dibrary, www.dibrary.net)'포털이라는 가상공간과 정보광장이라는 물리적인 이용자 서비스 공간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이 곳은 디지털 콘텐츠와 아날로그 콘텐츠를 융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외 학술분야나 언론 정보분야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디지털도서관은 불과 개관 5개월 만에 이용률 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이 곳에서는 국내·외 각종 협력기관과 연계해 학술·전문·지역·정책·해외정보 등 총 1억1,600만 건의 다양한 디지털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만큼 활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울산에서도 지난 2007년 울산대 교수와 전임·비전임 기록관리자 등이 설립한 울산기록연구원이 울산의 기록물 보존과 관리상의 개선방향을 제시한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민간이 만든 이 단체는 울산지역 5개 구·군 문화원과 향토사연구소 등 지역의 학술·문화·역사 연구단체와 개인을 대상으로 '울산 역사기록물 생산·수집 보유현황 조사'를 올해 말 이전에 끝내고 보고서를 공개할 계획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울산지역은 광역자치단체라고는 하지만 지역 자체의 역사를 담은 자료가 얼마나 되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민간에서 맡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누가 하든 지금이라도 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시립도서관은 그 도시의 자존심과 직결된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제일 먼저 찾는 곳은 그 도시의 박물관과 대학, 도서관 등이 우선순위가 된다. 물론 유명한 관광지도 빠지지 않고 들리게 되지만 제대로 갖춰진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찾은 사람이라면 그 도시의 이미지를 연상할 때 박물관과 도서관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관광을 위해 울산을 찾는 사람들이 태화강을 보고 공단의 시설을 살핀 뒤, 질 좋은 불고기나 고래고기 몇 점으로 입을 즐겁게 했다고 울산을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산업의 메카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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