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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를 '밥'으로 만들려는 관심이 대세가 된지 오래다. 너도나도 문화를 밑그림에 깔고 수만가지 변용을 꿈꾸고 있다. 집단과 조직은 고전주의가 됐고 개성을 넘어 '콘텐츠'가 먹을거리의 효자로 떠올라 이미 대세로 자리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의 주류는 대체로 전통문화를 말한다. 오늘의 문화조차 전통과 옷깃 스치는 인연이 없으면 돈이 되지 않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문화는 이미 생산품이 됐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경제적 이득으로 바꿀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화는 불과 수년 전만해도 인문학의 범주와 예술 전반을 포괄하는 존재론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한마디로 '밥'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문화는 IT 혁명에 버금가는 대변신을 시작해 이미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두둑한 금고 역할을 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그토록 푸대접을 받았던 전통문화라는 것이 언제나 그 중심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서커스의 대변신이 그 좋은 예다. 지난 2007년 국내 첫 선을 보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공연예술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태양의 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 퀘벡 주에서 당시 22세의 길거리 곡예사 기 랄리베르테가 만들었다. 1982년 일군의 젊은이들과 광대그룹을 만든 그는 기존 서커스 업계의 관행이던 동물 묘기를 없애는 대신 스토리라인을 도입하고 새로 작곡한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등 세련미와 예술성을 강화했다. 낯선 서커스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세계 120여개 도시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의 변신은 바로 침묵하던 공연자들에게 '스토리'를 입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도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인에게 개연성을 가진 신화와 전설의 요소들을 공연 속에 이야기로 풀어 관객들의 심금을 녹였다.


 세계 각국이 문화를 브랜드로 내세우고 이를 마치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목뼈를 고추 세우는 것은 한 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는 자신들이 약탈한 인디언 문화뿐이던 미국이 독립기념관과 자유의 여신상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도 자국문화의 왜소성을 피해보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세계문화유산 이야기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 관리하는 세계문화유산은 따지고 보면 객관성 보다는 국력이나 국가위상에 치우친 감도 없지 않다. 현재까지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이탈리아다. 조상의 문화유산으로 밥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는 이탈리아는 무려 34건의 지정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 뒤를 프랑스, 독일, 중국 등이 따르고 있다. 문명의 태동지인 중동과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인 인도지역은 그들의 문화유산에 비해 초라한 지정목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우스운 것은 바로 미국이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미국 내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은 인디언 유적지를 제외하면 대체로 2백년이내의 역사를 가진 가장 '젊은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신들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열중한 것은 바로 한 국가의 문화가 국가의 경제력보다 더 우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지금, 과거 조상들이 남긴 흔적을 상품화하는데 혈안이 됐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는 지역주민들이 선두에 서서 이를 자랑하고 새로운 형태로 상품화해 세계인에게 알리고 있다.
 세계의 흐름에 어두운 문화재청에게 몇 마디하고 싶다. 문화재청은 우리 문화를 관리하고 발굴, 복원하며 이를 진흥하는 주무관청이다. 관청이 문화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국민이 위임한 권리를 행사하는 곳일 뿐이다. 그런데 이들이 반구대암각화를 두고 월권을 넘어 패악을 부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응급처방을 고수하고 있는 울산시를 압박하기 위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지정을 서두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문화유산이 불길에 싸이면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면서 물에 잠기는 것은 별무 반응인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이를 되돌려놓겠다는 울산시의 응급조치에 어깃장만 놓는 관청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집단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울산시가 물막이 조치와 생태둑 조성으로 반구대암각화를 물 밖으로 온전하게 드러내려는 것은 바로 문화의 복원을 위한 조치다. 돈이 되는 문화이기 때문에도 아니고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해서도 아니다. 무엇보다 울산의 첫발자국인 암각화를 온전하게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다. 수장된 암각화가 새벽마다 헐떡거리는데 잠정목록 지정 따위는 한마디로 우스운 이야기다. 물에 빠진 사람은 우선 건져 올려놓고 사연을 들어보는 것이 순서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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