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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동안 자맥질을 반복해온 반구대암각화가 온전히 사계절의 바람과 햇살을 호흡할 수 있게 됐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울산시민들의 문화재 사랑이 하나의 결실을 맺은 사실 만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동안 정부를 대표하는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에 저질러온 혹독한 만행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것으로 상쇄될 수 없는 일들이다. 그 만행의 낱낱을 반구대암각화는 알고 있다. 징이 박히고 살점이 뜯겨나간 무자비한 훼손의 주체가 바로 문화재청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에 기록될 사건이다.


 지난 2003년의 일이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은 서울대 석조문화연구소는 반구대암각화에 무려 189곳이나 해머로 타격을 입혔다. 명분은 암석의 풍화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지만 방법은 거의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그 당시 서울대측은 슈미트 해머(일종의 쇠망치)로 암각화 표면 전체에 30㎝ 격자 간격으로 집중 타격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문제의 해머는 토목공사 현장에서 암석의 강도를 추정하는 데 활용하는 도구였다. 물론 콘크리트의 경우 하나의 연결된 덩어리라 피해가 거의 없지만, 반구대암각화는 1∼2㎝의 얇은 피막으로 덮여 있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셈이다. 이는 2003년 이전의 반구대암각화 사진과 이후의 사진이 확연하게 다른 점에서도 증명됐다.


 반구대암각화는 1965년 사연댐이 건설된 뒤 매년 7∼8개월간 침수가 반복되면서 훼손돼 왔다. 서울대의 해머타격 이전에도 이미 침수에 따른 훼손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 사건은 암각화 표면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기 때문에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타격한 자리를 중심으로 미세균열이 발생했고 이 속으로 물이 들어가 훼손이 가속화 됐다. 이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사진작가의 숨은 노력 덕분이었다. 바로 암각화가 발견된 1971년 이후부터 매년 암각화 사진을 찍어온 김호석씨다. 그는 학술발표회 때마다 반구대암각화의 심각한 훼손 상태를 세상에 알렸고 보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선사인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반구대암각화는 서울대측의 해머타격 이후 오른쪽 끝의 호랑이 머리문양 전체가 사라졌다. 특히 암각화 왼쪽 끝에 위치한 고래 세 마리와 함께 유영하는 상어는, 지느러미를 비롯해 중간 부분이 잘려 나갔다. 뿐만 아니다. 왼쪽 상단과 중앙 하단의 고래들도 몸통과 지느러미 일부가 훼손됐고 중앙 상단의 고래와 노루 그림은 바로 위 표면이 크게 떨어져나가면서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로 남아 있다.


 문화재청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과 부설연구소들이 반구대암각화 탁본작업이나 스캐닝작업을 할 때면 어김없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왔다. 줄잡아 수백차례의 탁본작업은 반구대암각화의 표면을 직접 타격하는 위험한 작업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종이 한 장으로 허가를 한 채 현장 확인은 전혀 하지 않았다. 원형보존을 그렇게 외치며 울산시의 물길돌리기가 경관훼손이라며 반발했던 태도와는 너무나 다른 문화재청의 이중적 잣대가 차라리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본지를 비롯한 울산지역 언론이 반구대암각화 훼손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바로 문화재청의 이중적 태도를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반구대암각화는 물길돌리기나 수위조절을 떠나 그 자체의 보존이 우선되는 문제이기에 울산시가 추진해온 물차단 대책을 지지하며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입장은 열린 자세로 대책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식이었다. 물대책은 울산시가 알아서 하고 무조건 사연댐 수위부터 낮추라는 억지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울산시와 지역 정치권은 더 이상 문화재청에 반구대암각화 대책을 맡겨놓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시와 지역정치권은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 등을 통해 울산권 물대책을 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와 연계할 것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이번에 그 결실을 보게 됐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문화재청이 그동안 반구대암각화에 가해온 모순적 태도와 만행을 사죄하는 길은 지금부터라도 열린 자세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길이다.


 그 첫 작업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잇는 '선사문화벨트'를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하는 일이다. 문화재청은 국내 문화재 가운데에서 선사 유적과 성곽, 고분, 절터, 패총 등 역사적으로 기념될 만한 지역과 시설물을 국가지정 사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국가사적을 지정하는 이유는 문화재의 대부분이 그 기반을 토지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고 범위가 광대하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의 보호·관리가 필요해서이다. 이제 물문제가 가닥을 잡은만큼 문화재청은 사적지정부터 해야한다. 이를 통해 암각화군의 가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보존법을 찾고 암석에 응어리진 이 땅의 선사문화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일을 제대로 할 때 그 동안의 만행이 그나마 조금은 희석될 수 있다. 물론 문화재청장은 이를 이행하고 반구대를 찾아 울산시민에게 머리숙여 사죄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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