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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주간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의 흔적이 배여 있는 코펜하겐에서 의미 있는 국제회의가 있었다. 회의의 공식 이름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 총회. 130개국 정상들이 모인 이번 회의는 그러나 무성한 뒷말을 남긴 채 끝났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나오면 언제나 뒷덜미가 찜찜한 미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등이 마지막까지 교토 의정서를 대체하는 전 세계적 온실가스 감축 합의를 구속력을 갖춰 도출하려고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다만 '유의(take note)' 라는 모호한 합의로 그들은 코펜하겐을 떠났다.


 이번 회의 결과에 가장 큰 불만을 표시한 쪽은 아프리카다. 회의에 참가한 수단의 루뭄바 디-아핑 대표는 이번 회의에서 제시된 협약초안을 두고 '홀로코스트'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아프리카 주민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 가뭄, 산사태, 해수면 상승 등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발언은 즉각 파장을 몰고왔다.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 언론이 동조했고 일부 언론은 코펜하겐 협정을 '실패'와 '실망'으로 언급하며 정상회의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려던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각국 정상의 체면 살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회의기간 내내 전세계 환경단체들은 '지구의 마지막 5일'을 외치며 '지구는 너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며 정치지도자들을 압박했다. 그들의 외침처럼 지구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녹색성장을 외치는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녹색에너지를 개발하는 문제가 현안이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지구의 미래보다 당장의 이익이 절실하다. 때 아닌 고등어떼가 동해안에 줄을 잇고 해파리 무리가 삼면의 바다를 덮어도 고유황유와 석탄연료를 펑펑 태우는 울산의 기업들은 손익계산만 따지고 있다. 하기야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지구가 없어지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온난화쯤은 쌓여가는 기업의 흑자더미와 상쇄하면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코펜하겐도 아니고 울산의 몰염치한 기업들도 아니다. 지구의 체온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 바로 우리의 문제다.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작은 얼음조각을 붙들고 있는 북극곰의 모습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지금 그 장면은 지구 온난화의 피해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활용되고 있지만, 그 상징의 구체화가 바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조사한 바로는 북극해에 떠 있는 얼음만 따질 경우 지난 2007년과 2008년 2년 동안 무려 300만㎢ 이상의 빙하가 녹아내렸다. 일부 전문가들은 2013년 여름쯤에는 북극해에서 빙하를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사라지는 것은 대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지구의 중병이 현상으로 드러나 흉측한 염증이 드러나고 붉은 반점이 곰팡이처럼 퍼지고 있다. 9개의 환초로 이뤄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가 그렇다. 몇 년 후면 이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투발루 영토가 조금씩 바닷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섬으로 밀려드는 조수가 가장 높아지는 2월에는 섬의 주요도로와 그 옆의 코코넛 나무들이 바닷물 속에 잠긴다. 손바닥만한 밭들은 염전으로 변한다. 태평양의 다른 섬들도 해안침식과 바닷물 침입, 식수 부족 등 투발루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30년간 약 3,173㎢에 달하는 안데스 빙하의 약 4분의 1이 녹아 내렸다. 올림픽 수영장 560만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 안데스 지방의 빙하는 더욱 빠르게 녹아내린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의 로니 톰슨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15년 안에 안데스산맥의 빙하가 모두 사라질 수 있다"고 예견했다.


 따뜻한 날씨를 따라 식목한계선도 꾸준히 북상하고 있다. 툰드라 지역으로 나무가 몰려오고 있다. 생태계의 변화는 이 지역에서 자라는 순록과 양, 이들 동물에 의존해 살아가는 현지 주민들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다. 툰드라의 위쪽 극지방의 사정은 더욱 심하다.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곰들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자야 할 동굴이 너무 덥고 축축한 탓이다. 혼란에 빠진 건 철새도 마찬가지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씨와 먹잇감을 제공하는 습지의 급속한 위축으로 철새들이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 미래의 지구를 컴퓨터 모델을 이용하여 예측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2100년의 우리나라는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5℃나 상승하고 해수면이 65㎝나 높아진다. 물론 고유황유를 줄기차게 사용했던 석유화학단지는 동해로 변하고 성안동 꼭대기가 그나마 살만한 곳이 될 듯하다. 사계절이 한계절로 바뀐 환경은 대부분 홍수와 가뭄이라는 극단적인 기후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소나무가 사라지고 태화강도 100리길이 50여리 남짓 줄어들게 된다. 어디 이 뿐인가. 정자 바닷가에서 즐기던 가자미 회는 이름도 모르는 열대어종으로 바뀌고 듣도보도 못한 야릇한 생선이 어시장을 장악한다. 비록 살점이 푸석해 횟감으로 적당하진 않겠지만 회 한 접시 먹으려고 연해주 연안까지 올라갈 수는 없는 일이니 입맛을 길들이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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