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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우리민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본이 사익에 눈먼 조선 정부의 앞잡이들을 내세워 국권을 침탈한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이 되는 해이고,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가운데 경술국치는 우리 현대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결정적 사건이다.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박제순 등 이 다섯이 이른바 '을사오적'으로 을사늑약이 있던 1905년부터 경술국치까지 조선을 일본에 병합하는 모든 업무를 주도했다.


 일본의 한반도 침탈은 오래된 숙원이었다. 조일전쟁의 패전으로 대륙진출의 꿈이 무산된 일본은 서방열국의 '동방야욕'에 편승, 대문을 열어젖히고 제2의 대륙진출을 노렸다. 그 결과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1904년 러일전쟁에 돌입하면서 그 야욕의 일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본이 조선을 교두보로 대륙진출을 이루는 첫 번째 공식 문서는 1904년 조선정부와 맺은 '한일의정서'였다.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통해 한반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철도 부설권 등을 비롯해 많은 이권을 가졌다.


 경술국치에 앞서 일본은 교묘하고 대담한 수법으로 조선에게 압력을 가해왔다. 1894년, 조선에서는 갑오개혁이 삼일천하로 끝나고 친일 개화파보다 친러 친미 개화파가 명성황후와 고종의 신임을 얻게 된다. 한반도 지배 야욕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군인 출신 미우라를 주한 공사에 임명하고, 미우라의 주도 아래 일본을 배척하던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1895년, 을미년에 일어난 끔찍한 이 일은 을미사변으로 부른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권 유린의 첫장이다. 눈앞에서 한 나라의 국모, 그리고 왕비가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손 쓸 방법이 없었던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한낱 왜국의 칼잡이들이 한나라의 국모를 잔인하게 시해하고 그 시신마저 수습할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었다. 어디 이 뿐인가 이 사건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목숨과 조정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의 공사관으로 도피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일본은 경술국치까지 을사5적과 손을 잡고 일사천리로 한반도를 집어삼켰다.


 치욕의 역사를 불러온 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의 책임이다. 외부의 변화에 눈을 감고 안으로 당쟁과 파벌, 지역과 출신을 따지며 편가르기에 열중한 결과는 참혹했다. 을사오적의 국권 팔아먹기가 국권침탈의 마침표였음은 확실하지만 이들의 매국행위만으로 역사의 치욕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일제는 국권침탈을 진행하며 철저하게 조선황실의 권위와 상징을 조롱하고 없애는데 열중했다. 바로 그 출발이 궁궐의 파괴였다.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바꾸고 경복궁을 조선총독부로 가리는 행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1906년 조선 통감부를 설치한 일제는 제실(帝室) 재산정리국과 어원(御苑) 사무국을 총관하면서 성안의 여러 궁궐을 헐어 없애고 황제의 무료함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을 건설한다는 발표를 했다. 조선 왕실의 궁궐이 더이상 신성한 황제의 상징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놀이터로 전락하려한 일제의 속내가 담긴 공사였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 일본과 우리 언론은 새해벽두부터 한일관계를 특집으로 각종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은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문제다. 지난 100년간 일왕의 존재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왕이 한국 방문을 하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총정리의 의미와 신성불가침한 왕의 권위를 되새긴다는 상징과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왕은 과거 100년간 지속된 양국간의 불편한 공존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는 진정한 사죄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일왕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과거사에 대한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스스로 이 문제를 풀 의지를 갖고 있다면 내일이라도 한국 땅을 밟으면 된다. 하지만 한일의정서로 시작된 국권침탈 과정의 부당성에 대해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은 채 이 땅을 밟는다면 100년전의 치욕에 다시 한 번 오욕의 상처를 입히는 결과가 된다. 일왕은 자신들의 주장처럼 합방 100년을 맞아 이 땅을 찾아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할 때 한국 방문이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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