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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 최초의 탐정소설 '혈가사(血袈裟)'를 지은 박병호(朴秉鎬)는 울산사람이었다. 1888년 3월에 당시 경남 울산군 울산읍 복산동 569번지에서 태어났다.
 개진학교(현재의 울산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울산군 서기로 근무하다가 3·1운동 직후에 울산청년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고 민족운동에 적극 나섰다.
 혈가사는 추리잡지 '계간 미스터리'가 2002년 여름 창간호에 발표함으로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울산에서는 이미 광복 다음해인 1946년에 김태근 선생이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했다.
 그러다가 2002년 10월에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에 보관돼 있던 혈가사 책이 발견됨으로서 큰 관심을 모았다. 책은 상·하 두 권으로, 1926년 당시 울산인쇄소에서 인쇄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혈가사는 그보다 6년 전인 1920년경 양산 통도사가 펴내는 잡지 '취산보림(鷲山寶林)'과 '조음(潮音)'에 발표됐다. 혈가사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채만식(蔡萬植)이 1934년에 지은 '염마(艶魔)'를 최초의 추리소설로 꼽았다.
 혈가사는 귀족이 남긴 외동딸 이숙자가 서울 남산공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으나, 남자 친구의 도움으로 어머니 행세를 해온 기생 농파가 자신의 상속권을 빼앗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마침내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일제가 책이 출판되자마자 귀족 작위를 지닌 친일인사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압수했기 때문에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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