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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韓民族)의 우수성은 반만년 단일역사가 증명하듯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특히 지적 능력과 손재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짧은 시간 동안의 집중력과 이해도가 더욱 그렇다. 대화를 시작한지 불과 몇 분만 지나면 결론이 내려진다. 동조를 하든, 반대를 하든 일사천리다. 경상도식 표현을 빌자면 "됐나"에 "됐다"로 응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너무 우수하기에 야기되는 성급한 결론이 숱한 화(禍)를 부른다. 비록 남의 생각이나 의견에 동조를 하더라도 검증 절차는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이 토론이다. 참석자들 모두가 흉금을 터놓고 예상 가능한 문제점과 여기에 따른 대응책, 그리고 성공 여부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 않고 얻은 결론은 그 만큼 위험 부담이 높다. 또 성공 가능성이 낮다. 덮어두고 결론부터 내린 뒤 결과는 운명에 맡긴다는 사고에 물들어 있다. 이 모든 것이 토론문화 부재 때문이다. 오랫동안 어른들이나 상급자의 말에 순종하는데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장시간의 토론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보다 큰 문제다. 흔히 "머리 아프다"거나 "귀찮다"는 투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데 너무 익숙해 있다. 이런 일련의 우리 정서가 대통령 선거철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습효과'가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말끝마다 '이인제 학습효과'를 주문(呪文)처럼 외고 있다. 학습효과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판단, 자신들에게 이로운 쪽으로만 꿰어 맞춘데 따른 결과물이다. 물론 한나라당 지지자나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는 '빅2' 지지그룹에서 나타나는 반응이다. 이들은 "이인제의 전례에서 보았듯이 소속 정당을 뛰쳐나간 배신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자신한다. 10년 전의 상황과 현재 여건은 고려 대상에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다. 무조건 과거에 그랬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확신만이 존재한다. 또한 당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선(善)이고 떠난 사람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에 매몰되어 있다. 이런 차제에 '학습효과'를 가르쳐 준 주인공이라 할 이인제 의원이 뼈있는 평가를 내려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먼저 '이인제 학습효과'란 말이 자주 사용되는 것과 관련 "결단의 시점은 물론 동기, 목적도 같지 않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나왔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는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손 전 지사를 옹호했다. 대권도전 선배로서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손 전 지사는 시대의 명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의(大義)를 위해 절벽 위에서 민심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개척자의 길은 외롭다. 이제 그는 비난과 침묵의 무게를 견디면서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10년 세월동안, 너무 일찍 만개(滿開)하려다 좌절한 정치인의 고뇌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평가다. 그러나 우리는 이인제 의원의 지적이 아니라도, 손학규 전 지사와 이 의원과는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단 40대 중반에 대권도전 카드를 던진 이 의원과 50대 말에 도전장을 낸 것부터가 다르다. 특히 이 의원은 빈농의 아들로서 출세지향적인 삶을 살아 왔다면 손 전 지사는 그래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며, 고통도 감내했다. 이 의원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그 시절에 손 전 지사는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투옥과 수배, 고문으로 점철된 청년기를 보냈다. 두 사람 모두 국회의원과 경기지사, 장관을 했다는 이력은 같지만 삶의 내용은 이처럼 판이하게 다르다. 더욱이 시대상황이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경험했고, 시대의 담론도 냉전과 이데올로기 대립 구도를 벗어났다. 또 자유분방한 사고의 젊은 물결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는 곧 하나의 좌표, 목적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개발시대의 단순논리에 갇혀있지 않고 열려 있다. 줄 세우기에 극도의 염증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한 사람에 의해 모든 것이 주물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상명하달식이 아닌 통합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손 전 지사에게 직격탄을 날리며 비난 대열에 뛰어든 것도 그의 파괴력이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위기의 반영이다. 학습효과 운운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패배자의 주문이지, 시대를 꿰뚫는 혜안이 아니다. 그리고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차기 대선은 예측 불허의 격랑에 빠져든 것만은 분명하다. 손 전지사의 대권쟁취 여부는 그 다음이다. 이것이 대세론의 꿈을 깨게 하는 천둥소리로 자각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은 무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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