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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 거짓말, 거짓말"
 운전 중, 갑자기 조광조의 노래 '거짓말' 핸드폰 컬러링 소리가 들린다. 조수석에 앉아 계신 어머니께서 "여보세요! 아! 친구야!"로 통화를 시작하신다. 그런데 통화의 말미가 영 개운하지가 않다. 전화가 끊긴 것이다.
 "왜 전화를 그렇게 끊어요?"
 "할 이야기 다 했는데?"


 나는 무슨 전화를 그렇게 끊느냐는 핀잔을 주었지만 어머니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모든 말을 다 하지 않아도 통(通) 할 수는 없을까?
 얼마 전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사양성과정' 첫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의사소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의를 하면서 내가 정한 원칙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출석을 부르는 것이다. 성적 평가를 위해서 출석 확인이 필요한 대학 강의와 달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에서 출석은 선택 사항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짧은 강의 시간을 쪼개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치는 이유가 있다. 그 순간만은 강사와 수강생이 1:다(多)의 관계가 아닌 1:1의 온전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첫날 출석 확인을 위해 결혼이주여성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러 번 실수를 했다. 이름이 낯설고 힘들어 발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후엔티빛'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도 여러 번 버벅거리는 실수를 하였다. 그랬더니 베트남에서 온 후엔티빛이 "선생님, 저……. 한국이름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수진'이란 이름 석 자를 건넨다. 몇 번만 부르면 익숙해 질 거라고 생각한 나는 "아뇨. 베트남 이름으로 불러드릴게요."라고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 분이 다시 말을 건넸다. 망설이는 말투였지만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분명했다.
 "아뇨. 한국이름도 내 이름이니 한국식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곧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하는 내내 그 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마음이 갔지만 곧 수업에 집중하였다.


 수업이 끝난 후에 그 분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 베트남 사랑해요."라고 했다.
 "예?" 당황스러웠다.
 "베트남을 사랑한다구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기가 힘드니까 쉬운 이름을 얘기했던 거예요. 베트남 이름을 부르지 않고 한국이름을 불러달라고 해서 베트남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아! 예……!"


 나는 '후엔티빛'이라는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 분은 베트남을 사랑한다고 했다. 뭔가 오해가 생긴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불행히도 그 분께 베트남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내 마음을 잘 전달하지 못했다. 본의아니게 상처를 준 것이다.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이런 일을 원천봉쇄할 해법도 없다. 의사소통은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해진 법칙이 없다. 말 그대로 '그때 그때 달라요~~'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말이 아닌 글을 이용하는 것이다. 글을 이용한 의사소통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개인적으로 쓰는 이메일이나 블로그 뿐만 아니라 공적으로 쓰는 보고서까지도 의사소통을 위한 좋은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일이 그다지 즐겁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나 생각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이 상대방에게 평가받는 일이라는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내 마음을 전달해야겠다는 열린 자세를 가진다면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울산대 국어문화원이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니 적극 이용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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