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침이 잦았던 우리 나라에는 선조들이 수많은 성곽(城郭)을 쌓아 국토를 방어했다.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만들었는가하면, 신라도 왜적의 침략을 막기위해 울산에도 그 일부가 남아 있는 관문성(關門城)을 쌓았다.
 우리 나라에는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성곽만 해도 무려 1,300여곳에 이른다고 한다. 동남해안에 위치한 울산은 국방의 요충지라서 40여곳에 성곽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일부라도 남아 있는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관문성(사적 제48호)과 언양읍성(사적 153호), 병영성(사적 제320호)이다.
 그 흔적이나 일부가 남아 있어서 울산시 기념물로 지정된 것으로는 개운포성지(제6호)와 유포석보(17호)와 남목마성(18호), 언양 천전리성(19호), 문수산성지(34호), 서생포만호진성(35호)이 있다. 울산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것으로는 학성공원으로 쓰이고 있는 울산왜성(제7호)과 서생포왜성(8호), 운화리성지(14호), 비옥산성(15호)이 있다.
 그 외에도 임진왜란 때 울산의병들이 맨 처음 창의의 기치를 들었던 기박산성과 오늘의 울산 중심지를 에워쌌던 울산읍성과 반구동 토성, 염포영성, 단조산성, 숙마성지, 대운산성, 범서산성 등이 있었다.
 그들 성곽 가운데 고을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기능한 것이 읍성(邑城)이었다. 울산에 있었던 두 곳의 읍성 가운데 언양읍성은 그 일부라도 남아 사적으로 지정돼 있는 반면, 울산읍성은 깡그리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다. 울산읍성지를 찾아내어 그 흔적이나마 남겨놓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