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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의 그림은 화폭에 감성 뿐 만 아니라 사물에 대한 시선 방향, 지적인 수준 등 그린 이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그림은 작가의 내면과 전신을 비춘 거울 이라 할 수 있다. 아르쉬(Arches)의 표면을 오일파스텔이나 오일바로 메꾸고 힘들여 긁어내는 매우 수공적인 작업을 반복하고 있는 필자는 작업 중에 스스로 우직한 소의 모습을 화면에서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우직한 드로잉과 소박한 재료의 조합으로 얻을 수 있는 강한 손맛과 함께 시간성을 지닌 신변잡기적 이미지 조합이 주는 다정함은 떨칠 수 없는 매력이어서, 필자의 화면에는 25년 가까이 다양한 시간이 영원을 기대하며 예의 우직한 모습으로 깃들어 있다.


 그렇게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 있는 원시의 신비한 시간이나 어린 날의 해말간 시간, 지난 여름의 화려한 시간이나 어젯밤의 고요한 시간들 가운데에는 머지않아 상투성을 가지고 모종의 형태로 패턴화 되어 버릴지 모를 학령기 이전 아이들의 시선이 머문 시간도 있다. 그 천진하고 신선하기 짝이 없는 시선이 머문 시점은 특별히 화면에 보존하고 싶은, 더 없이 소중한 시간성이다. 필자가 화면에서 낮은 톤으로 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잠재적인 작은 화가들이어서 그들의 그림도 자라난 환경, 성격, 정서적, 지적 발달단계에 따라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담고 자신 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한편으로 여러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필자가 재미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아 그림 이미지들은 모든 유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학령기 이전 아동들의 표현은 필자가 보건대 웬만한 현대미술 작품을 능가한다. 솔직한 시선과 기발한 착상으로 어떤 성인 화가의 작품보다 시선을 강하게 붙들고 표현의 진정성으로 탄성을 발하게 한다. 어떤 기교나 노력으로도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하고 특별한 시각이 보물처럼 모든 유아들에게 장착되어 있어서, 필자는 유아의 그림에 들어있는 시선과 생각을, 그리고 그 시점을 보석처럼 여기며 오래 간직하기 위해 가장 엔틱하게 느껴지는 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소중히 작품으로 옮기곤 했다.


 그림작가인 필자가 보물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의 그림으로 가장 초기의 공통적인 표현은 두족인(태양인)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세계의 모든 엄마들이 자신들의 아이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태이다. 얼굴에 바로 팔과 다리가 붙어 있는 사람의 형상이 그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을 자신과 동일시해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태양이나 꽃, 구름 등에 눈, 코, 입을 그리는 소위 애니미즘(animism)현상이란 유아들의 독특한 표현방식이다. 또한 엑스레이식 표현을 통해 집 안에 있는 사람이나 땅 속의 벌레를 투시적으로 그린다던가, 여러 가지 상황이나 사물을 한 화면에 비례, 시간, 공간, 방향, 위치 등을 공존시켜 표현하는 방식, 강하게 받은 인상이나 느낌을 사실보다 과장하여 나타내고 또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략하거나 작게 그리는 것. 중요한 사항을 시점 관계없이 카탈로그처럼 모두 나열하거나 또는 반복해서 그리는 경우, 사람을 허수아비 식으로 그리고 팔 다리의 각도나 길이를 편리한 대로 표현하는 것 등. 성인의 생각과 시각에 철저히 배치되는 그 신선한 의외성에 필자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 절로 미소 지으며 곧 바로 매료될 거라 생각한다.


 학령기에 접어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화면에 기저선을 긋고 하늘과 땅을 구분하게 된다. 땅 위에 사람, 집, 나무 등이 있고, 하늘에 태양, 구름, 새 등이 그려진다. 이것은 공간개념의 확립을 의미하며 최초의 공간 도식화의 표현인데, 유아의 그림에서 기저선이 나타나면 사물과 사물의 관계, 즉 자기와 타인의 관계를 인식하고 사회성이 성장하는 시기라고 한다. 철저히 독자적인 사고와 표현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아쉽게도 조금씩 시선의 방향을 바꾸고 타인과 발을 맞추어 행보하게 되는 것이다.


 학령기 이전 아이들이 그려놓은 그림이나 낙서 등의 여러 조형 결과물은 그들의 내적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서 교육자, 심리학자, 미술교육학자들은 학문적 연구의 소재로 많이들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유아의 그림들이 가진 신비한 역설(공통이면서 독창적 세계관을 가진)에 시선을 강하게 붙잡혀 있다. 그 그림들은 임화의 욕구를 유발시키는 매력적인 소재로 세상 아이들의 수만큼 존재하며 힘겹고도 행복한 작업을 늘 충동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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