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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화시대 이후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이 있다면 '중앙권력 눈치 보기'니 '낙하산 인사' 등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지방민들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중앙권력의 시녀로 살아왔다. 행정단위로는 특별시, 도, 광역시, 시·군·구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보다 잘 침투하도록 하는 통로에 지나지 않았다. 지방민의 주권은 오직 중앙의 손짓에 따라 크기와 내용이 결정되는 봉건왕조시대의 연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공화국이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헌법에나 박제되어 있지 현실에서는 가당치도 않았다. 도로를 하나 놓든지, 마을교량을 하나 세우더라도 중앙에서 돈을 줘야 가능했고 이 모든 것을 지역출신 국회의원(나으리)과 중앙에서 파견된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이 대행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민을 위해 일해야 할 이들이 지방민 위에 군림하는 역행(逆行)을 해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인사명령장 하나를 받으면 훌쩍 떠나갔고, 다음의 수령·방백으로 누가 올 것인지에 대해 기대 반(半) 우려 반(半)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선택권 자체가 완전 무장해제 됐다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는 이를 뒤엎은 우리 정치사의 혁명이었다. 주인이 부려먹을 머슴을 직접 선택하는, 신성한 권력을 반백년 만에야 되찾았다. 그런데도 우리의 선거현장은 오히려 과거로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특히 선출직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군들이 중앙권력이라면 더욱 사족을 못 쓴다. 주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하면서, 중앙 끄나풀을 잡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은 모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전략공천이다. 지방민들의 여론을 물어 후보자를 결정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하게 된 궁극적 목적에 닿아 있다. 그러나 전략공천은 말 그대로 전략적 선택이다. 공천신청을 한 후보자 가운데 당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 없을 때 마지못해 깜이 되는 인물을 차출, 공천을 하는 것이 정당의 전략공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벌어지는 전략공천은 이런 취지마저 전면 무시되고 있다. 당내경선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전략공천을 바라고 있다. 그러다가도 전략공천이 상대 후보로 갈 것 같으면 언제 그랬느냐며, 전략공천을 절대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당(公黨)의 공천을 받겠다고 한다면 공개경선을 각오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자신감도 없다면 선거판을 아예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일부 인사는 출마의사를 일체 드러내지 않으면서 물밑에서 전략공천을 위해 땀이 나도록 뛰고 있다. 출마의사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공연히 출마한다고 했다가 체면을 구길 수 있어 이런 물밑행보로 거취를 결정하려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체면보다 전략공천이 아니고는 공천 자체가 난망해 이런 행보를 취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이것도 아닌 측은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략공천을 이용하고 있다.


 예컨대 자신이 전략공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말을 흘리는 것만으로 인지도와 지지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울산을 텃밭으로 하고 있다는 한나라당 기준으로 전략공천은 아주 예외적으로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개경선이 오히려 지지자들을 와해시킬 우려가 높을 때, 또는 본선 상대후보와의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확실히 떨어지는 경우 등으로 극히 한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개신청을 받아 경선이나, 공천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후보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공천 기본전략이다. 이는 당내 후보자의 당선을 배가시키는 방법인 동시에 지역정치의 최대주주로서 당연한 도리라 말하고 있다.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당들도 같은 입장이다. 더욱이 노동계라 할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경선원칙을 금과옥조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도 전략공천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선거구에서 이를 계속 흘리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당의 당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방선거는 우리의 주권재민(主權在民) 헌법정신을 실현하는 장이다. 더욱이 반세기 동안이나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아오는 축제의 마당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지방선거에 중앙권력 줄서기의 표본이라 할 전략공천이란 말이 더 이상 유령처럼 떠돌지 않기를 바란다. 전략공천은 당의 몫이지, 후보자들이 되니 안 되니 할 말이 아니다. 유권자들도 전략공천 후보자를 결코 반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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