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침없이 달려온 울산이 최근 과거를 돌아보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울산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했다. 중앙정부의 상명하복식 행정구조를 벗어던진 민선시대가 바로 그 출발점이다. 중앙과 지방으로 이분화된 차별의 잔재가 아직은 남아 있지만 지금 우리는 중앙과 지방보다는 모두가 지역으로 대별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역은 바로 차별적 개념을 넘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보완하는 발전적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전히 지역에서도 중앙을 그리워하는 중앙사대주의가 남아 있는 현실을 탓할 수는 없지만 지역의 변별력이 확고해 질수록 이 같은 잔재는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역의 정체성이 확고해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문화다. 안동 하회마을이 그렇고 전주 한옥마을이 그렇다. 제주가 세계유산이 되고 특별자치도가 된 것 역시, 제주만의 정체성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국의 지자체들은 저마다 지역의 역사성을 뒤적이고 사라지고 흩어지고 숨어버린 과거를 현재와 연결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행히 울산은 그 연결의 단서들은 무수히 많다. 신라 천년의 문화루트였던 울산은 헌강왕이 만난 처용은 물론, 화랑사관학교가 있던 대곡리와 갈문왕의 사랑이야기가 서린 천전리서석 등 고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신라인의 유토피아였던 대곡천은 그 경치가 수려하고 골짜기마다 웅온한 기상이 서려 흔히 백련구곡이라 불린다. 조선시대 진사를 지낸 경주출신 도와공(陶窩公) 최남복(崔南復)이 지금은 수몰된 대곡천 상류에 백련서사(白蓮書舍)를 지어 후학을 가르쳤다. 그 때 최남복이 지은 백련구곡가가 대곡천을 따라 오늘에 까지 흐르고 있다. 이 노래는 조선조인 1808년 가을 최남복이 대곡천을 둘러보면서 중국 송나라 주희의 무이구곡가의 운을 빌려 지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 계곡의 정점에 천전리 각석이 있다.


 화랑의 정신세계가 산하에 서려 오묘한 기운을 뻗친 곳이 대곡천의 출발점이라면 그 상류에 발복의 문양으로 축원하던 제단이 천전리 각석이고 그 물길 헤쳐 사연댐과 만나는 지점이 반구대다. 수천년 전 이 곳에 터 잡은 이들은 거북의 측면에 무수한 고래를 새겨 이 고래떼가 태화강을 가로질러 동해로 이어지는 꿈을 매일 밤마다 꾸었고 그 꿈의 마지막은 목선에 웅장한 귀신고래 한 마리 넙죽하게 올려놓는 일이었음직하다.


 바로 그 신성한 기운이 흐르고 메아리치는 곳이 울산 태화강 상류 대곡천이다. 그래서 대곡천을 두고 많은 학자들은 한국문화답사 일번지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찬찬히 가만가만 숨을 고르고 우리 문화의 출발점부터 더듬어 보면 대곡천이 왜 한국문화의 기원이고 오늘의 우리가 우리 문화를 답사하는 데 첫 출발지를 삼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대곡천은 바로 우리 문화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품고 있는 곳이다.


 울산은 바로 여기서 울산 문화의 출발과 정체성 찾기의 대장정을 시작하고 있다. 대곡천에 대한 사무치는 애정이 없다면 태화강 물축제도 고래축제도 처용문화제도 그저그런 이벤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곡천에는 국보로 지정된 두 암각화 외에도 수많은 공룡발자국 화석지, 청동기시대 주거지 등 선사시대의 흔적과 통일신라시대 토기가마터와 원효가 주지로 주석하던 반고사지로 추정되는 신라의 고찰 터가 있는가하면 고려시대 언양 요도로 귀향 온 포은 정몽주가 찾아온 흔적을 기록한 유허비와 조선시대에 정몽주, 이언적, 정구의 위패를 모신 반구서원을 통해 유교선비문화도 같이 느낄 수 있는 한국문화의 회랑과 같은 곳이다.


 답사지로서 이 계곡은 딱딱한 역사공부를 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그저 가벼운 차림으로 계곡 초입에 서면 계곡 따라 가볍게 부서지는 수천년 묵은 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그 바람에 문득 옛이야기가 궁금해지고 그 자취와 흔적이 길 따라 보물찾기처럼 숨어 있는 매력은 걷지 않고는 느낄 수없는 일이다. 울산과 경주를 잇던 옛길의 중간이자 세계와 교역하던 개운포 뱃길이 태화강을 거슬러 왕국의 서울로 이어지는 물길이 이 곳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발걸음은 금새 고대문화의 한 자락을 발견한 감흥과 신바람으로 한결 들뜨기 마련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새 봄 태화강 100리 길 걷기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태화강 100리를 걷는 일은 울산을 바로 알고 우리를 곧추세우는 작업이다. 그 첫 작업이 선사문화길이다. 이 길 위에 울산사람들의 발자국이 지역사랑의 문신으로 한땀 한땀 찍히는 순간 먼 과거로부터 오늘의 호흡이 끈끈하게 이어지는 소통의 역사로 남게 된다. 바로 그 시간이 벌써부터 설레는 이유는 이 길이 오래고 멀지만 너무나 큰 의미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