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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의회가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울산시 의정회 설치 및 육성 조례안'의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시의회가 아니라 한나라당 소속 주류 의원들이다. 당연히 비판여론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미 예상하고, 각오했다는 표정이다. 시민단체와 일부 동료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에 대해선 예비심사에 앞서 적당히 수용하는 듯 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6일 문제의 조례안에 대한 의회운영위원회의 심사과정은 한술 더 떴다. 이미 정해진 각본에 따라 조례안 심사에서의 찬반토론은 과정으로 끝났고, 곧바로 표결까지 정해진 회순에 따라 조례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긴말할 필요 없다는 투로 민주주의 다수결의 '파워'를 유감없이 드러낸 자리였다.
 물론 반대논리의 핵심이 된 조례안 제4조 지원 규정은 삭제했지만, 그 전이나 그 후에도 조례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십보백보였다. 이날 제4조 내용을 삭제하고 수정안을 내놓은 과정도 석연찮았다. 대표 발의한 의원들은 당초 지난 10일 제출한 '의안번호 132'호 안을 즉석에서 폐지하고, 대신 문제 조항을 삭제한 '의안번호 135'호 수정안을 급조하는 순발력을 발휘하면서 조례안 의결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반대한 시민단체와 일부 의원들은 오는 23일로 예정된 본회의 심사를 앞두고 의원총회 차원의 전향적인 재검토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지난 1998년 2월에 설립한 사단법인인 '울산시 의정회'만으론 성이 차지 않은 것일까?
 그동안 이와 관련해 어떠한 사전논의나 언급도 없던 시의회였지 않은가. 이번 4월 임시회를 앞두고 느닷없이 조례안을 발의해 놓고, 반대해도 소용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속내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사조직 의정회일 때나 조례를 근거로 한 의정회나 전·현직 시의원으로 하는 구성원은 똑같다. 목적 또한 틀리지 않은데 굳이 여론을 거스르고 제도권 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엔 딴 속셈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울산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에선 "전관예우이자 특혜의식의 발로"라며 조례안을 폐지할 것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조례안 반대의 가장 큰 이유로  2004년 4월 23일의 대법원 판례를 꼽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서울 서초구 의정회 설치 및 육성지원 조례안 재의결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덧붙여 '의정회는 지자체로부터 기부·보조를 받을 수 있는 공공기관 또는 단체에 해당하지 않는 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운영위를 통과한 조례안에는 이 판례의 핵심인 지자체의 지원 조항은 삭제됐지만, 이것으로 조례 제정의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지적했듯이 의정회는 공공기관·단체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조직이기 때문이다.
 시의회가 다수결의 힘을 빌어 공익단체로 아무리 꾸민다 해도 의정회는 누가 봐도 전·현직 시의원들의 친목모임이다. 이번 조례안 강행처리를 지켜보면서 의회의 위상강화와 이권이 물린 사안에 대해선 시의회가 유독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방자치제 발전과 공공복리를 앞세우던 지난날의 유급제 추진 때 그랬고, 보좌관제 도입을 비롯한 의회사무처 인사권 독립, 의정지원경비 현실화 등에 대한 최근의 두드러진 행보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운영위 회의가 열린 이날 의사당 복도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던 시민단체의 한 회원은 조례안이 운영위를 통과하자 "시민의 대의기관인 시의회가 민의를 저버렸다"며 허탈해 했다. 힘없이 의사당 현관을 나서는 그의 늘어진 어깨 뒤로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한 '의회마크'가 황금빛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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