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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뉴스로 들은 이야기다.
 올해 들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수가 작년에 비해 18%인가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거리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일까?
 혹자는 교통 소통의 탓, 아니면 상대의 부주의로 돌릴지 모르지만 그 원인은 어느 한 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낸 사람과 피해당사자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행 불행과 이러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신(神)이나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셨다. 당사자의 조급함, 또는 욕심이 화를 부르게 된 것이다. 남보다 빨리 차를 몰아 목적지에 가고자 위법을 일삼는 데서 사고는 일어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남보다 앞서 부(富)든 명예든 얻으려는 풍조가 만연 되어 모두 백 미터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처럼 정신없이 앞만 보고 치닫고 있다. 그러다보니 방송의 뉴스시간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온갖 비리와 갈등과 사고들의 연속인 것이다.  법화경의 화성유품에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험난하고 나쁜 먼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지치고 두려워함으로 그들을 휴식시키고자 성(城)을 만들어 그곳에서 안온락으로써 즐기도록 하시느니라"라는 대목이다.
 이 세상이 바로 부처님께서 사람뿐만 아니라 온갖 만물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 만드신 커다란 '화성(化城)인 것이다. 우리는 이 안에서 윤회의 고단함을 잊고 쉬어야 한다. 그렇다고 삶의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한 박자만 쉬고 다음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빨리 먹는 밥은 체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버들잎 띄운 물'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 쉼의 미학과 유용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실천하는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숨을 몰아쉬며 우물에서 물을 깃던  처녀에게 냉수 한 바가지를 요청하자, 아가씨는 옆에 있던 수양버들 잎 몇 개를 훑어 물 위에 띄어 건넸고, 그 뜻을 알아챈 나그네도 말없이 그 물을 받아 입으로 나뭇잎을 후후 불어 밀어내며 마셨다는 것이다. 목마른 상태에서 급하게 물을 들이키면 체하고,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쉬어가면서 마시라고 버들잎을 사용한 처녀는 관세음보살님의 화신 같아, 떠올릴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인슈타인도 저 유명한 '상대성이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병원침상에 누워 쉴 때 얻었다는 일화가 있다. 문제에서 한 발 물러나서 그것과 나를 동시에 관(觀)할 때 바른 해답이 나오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처럼 우리는 불생불멸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인데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무엇인가. 제대로 된 계획과 바른 실천으로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러한 것이라면 꼭 내가 끝을 맺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나 자신 선업(善業)을 가지고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데 정성을 다하고, 나의 아들들은 집의 골격을 올리는데 성의를 다하고, 손자가 마지막 미장을 맡아 아름다운 집을 완성하여 천 만세 내려가면서 사람들에게 안락을 누리도록 하면 어떨까!
 쉬면서 옆도 좀 돌아보고, 이 봄날 활짝 피어 있는 꽃도 감상하고, 이른 아침 들려오는 맑은 새소리에도 귀를 빌려 줄 일이다. 여기에 행복의 씨앗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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