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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기부는 당연한 것입니다."
 울산지역 결식학생을 위해 매년 500만원씩 10년간 총 5천만원을 울산교육청에 기부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던 뉴질랜드 교민 사업가 유시청씨(58·인터넷쇼핑몰 운영)를 7일 오후 남구 신정동 PTP(People To People) 울산챕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씨는 "사람들은 돈을 자기 것이라고 착각을 많이 하는 데 실은 사회의 것이다"며 "개인은 단지 돈을 보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에 어떤 방법으로 되돌려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번갈아가며 하고 있는 헌혈 또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며 "개인이 헌혈을 하면 건강검진을 해준다. 이것이 바로 기부문화의 축소판이며 사회인으로 기부가 당연한 이유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4년 이민을 떠나기 전인 1980년도부터 울산청년회의소와 PTP 울산챕터 회원으로 활동하며 봉사활동이 몸에 밴 유씨가 이처럼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민 초창기 유한양행을 창업한 고 유일한 박사의 유언내용을 다룬 기사를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고 유일한 박사는 외동딸에게 미화 1만달러만 상속해 주는 대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화제가 됐다.
 고 유일한 박사의 기사를 접한 유씨는 가족과 곧바로 상의해 유언장을 작성하고 4명의 자녀에게 각각 유산 2만달러와 결혼식비용 3만달러 등 총 5만달러만(뉴질랜드달러·한화 약 3천만원) 상속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반면 유씨와 가족들은 울산교육청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 한국학과에 각각 5천만원과 1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유씨는 "아이들이 이같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고맙게 생각한다"며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더욱더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고 말했다.
 이같은 자녀의 이해와 노력이 더욱 고마운 것은 유씨 역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수성가했기 때문이다.
 경주가 고향인 유씨는 10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 마저 병환으로 누워 생계가 어려워 졌다고 한다.
 때문에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학업중단과 복학을 수차례 반복해야만 했다.
 유씨는 "어린시절은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택시운전 등 온갖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며 "이후 학창시절을 보냈던 울산에서 유명 음료대리점을 했는데 어린시절 시련의 경험 덕분인지 전국 1등 대리점을 독차지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전국 최고 대리점 덕분으로 돈을 좀 모았고 뉴질랜드에 이민 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사업까지 하고 있는 유씨지만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다는 근검절약 정신은 소지품에서 잘 나타났다.
 유씨의 볼품없는 검은 가죽 줄 시계는 30년이 지난 것이며 휴대폰은 10년 전, 자동차 역시 12년 전에 구입한 중고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유씨는 "한 번 사면 깨지거나 고장이 나 다시 쓸 수조차 없지 않으면 절대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용한다"며 "아들에게 맑은 날은 밑창이 떨어진 신발을, 비 오는 날에 멀쩡한 신발을 신겨 학교에 보낼 정도로 아꼈다"며 웃어 보였다.
 그렇게 돈을 모았지만 유씨는 "단지 사회에서 돈을 잠시 맡겨둔 것으로 생각한다"며 "사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기부의 당의성을 밝혔다.
 이어 유씨는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굶는 것이 다반사였다. 지금 힘든 것은 인생의 훈련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다"며 울산의 결식 학생들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박송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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