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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미국 버지니아 대학 총격 사건으로 전 세계가 시끄러웠다. 특히 범인이 조승희라는 한국계 이민자로 밝혀짐에 따라 미국 사회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총기 소지 문제점이나 인종차별에 관한 논란들이 불거지고 있긴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승희란 한 인간의 개인사적인 생활 영역을 다시 점검해 보는 일이라 생각된다.
 조승희란 이름 뒤에 따라 붙는 명칭은 '말이 없는 아이, 집단 따돌림 피해자, 우울증 환자, 과대망상증, 스토커' 등 너무나도 많다. 실제로도 그는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그가 버지니아 대학의 학생인지조차 잘 모를 정도로 친구 한 명 없는 외톨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은 철저하게 고립된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 버림으로써 의사소통이나 대인관계에 장애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승희 같은 고립형 인물은 우리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의외로 많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온종일 같이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늘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라는 물리적 공간에 단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대상이 없다는 내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외톨이 아닌 외톨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늘 이해받고 있지 못하다는 피해의식 속에 자신만의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기도 한다.
 또 이런 사람들은 의사소통 기술이나 자기 표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인관계 접촉에 자신감이 없고, 대화가 거의 없으며, 지나치게 내성적일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얌전하고 침착하다는 장점으로 작용하여 사회 모범적인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강한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잘 표출하지 않고 안으로 억누르기 때문에 내재된 공격성이 많고, 자기 성격에 대한 열등감도 강해서 어떤 충격이 가해지면 돌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타인과의 접촉을 회피하여 집안 내부에서 나 홀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도구인 TV나 인터넷, 또는 가상세계의 게임에 중독되기도 한다.
 최근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청소년 비행이 급증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정의 핵가족화로 대화의 장은 줄어들고 맞벌이부부가 늘면서 방과 후에 아이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으며, 학원을 다니지 않을 경우엔 함께 놀 친구조차 없는 외톨이 생활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결국 그런 무료한 시간엔 인터넷이나 게임 등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수업 집중이 안 되고, 학습에 대한 흥미와 의욕을 상실하여 학습태도가 나빠지게 되면 수업 중에도 지적을 많이 받게 되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게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이일수록 사실 SOS를 많이 보낸다. 처음부터 대형의 문제를 한 번에 확 터트리기 보다는 그 전에 미리 잦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갑자기 반항을 하기도 하고 폭언을 하기도 하는 등 비록 비정상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부모나 주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도움의 몸부림을 친다. 우리는 그런 제스처 속에 숨어 있는 도움의 신호를 발견하고 빨리 대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방관으로, '누구는 잘 하는데 쟤는 도대체'라는 비교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골치 덩어리'라는 낙인으로, 어른들의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수없이 얽힌 관계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살아간다. 마치 거미가 자기 방식대로 거미줄을 짜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개성에 따라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거미줄을 짜지 못하는 거미는 어떨까? 결국 먹이를 얻지 못해 죽어버리듯 대인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을 풀지 못하여 정신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를 잘 맺는 것이다. 그런 관계의 시작은 대화에서 비롯된다. 좋은 대화란 잘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듯, 섣부른 조언과 잔소리 같은 충고보다는 상대의 깊은 마음속에 귀를 담그고 그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찌꺼기까지 열심히 듣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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