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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일승천하던 한나라당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4.25 재보선에서의 참패도 참패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영 불안하다. 우와 좌, 보수와 진보로 확연히 구분되던 전선이 서로 뒤섞여 뭐가 뭔지 구분이 되지 않고 있다. 여기다 정국을 주도할 이렇다 할 이슈도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좌익정권이라는 현 정부가 너끈히 해 치우고 있다. 한미FTA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연금법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그에게 덧씌워져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지금은 분배 제일주의를 고집하는 것이 그답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이런 인식을 알고나 있는지 미래 세대를 염려하는 용단을 내렸다. 참여정부가 정권 말기에 국민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적 사고나 실천만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는 자각이다. 동시에 더 이상 고정 지지층에만 안주하고서는 정권을 연장할 수도 마무리할 수도 없다는 위기감도 상당 부분 작용했으리라. 변하지 않고는 개인이나 집단, 누구도 생존할 수 없다. 참여정부가 늦었지만 이를 인정하고 정책의 큰 흐름을 바꾸고 있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숱하게 공격해 왔던 친북좌파니, 반미니 하는 것도 날이 무뎌지게 됐다. 현 정부가 요지부동으로 진보좌익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진보와 보수를 함께 아우르면서 활로를 찾다보니 표적이 흐려졌다.
 이번 4.25 재보선의 결과도 바로 이 같은 흐름의 반영이다. 국민들이 우직하고 단순한 것 같으면서 흐름을 간파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기민하다는 것을 실증했다. 최근 울산지역 정치권 인사, 특히 지방의원들을 만나면 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이념이 구국의 절대적 가치라 믿고, 이를 설파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딘가 모르게 힘이 빠져 있다. 또 자신은 당내 대선주자 중에 누구를 지지한다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던 것과 달리 지지후보를 어물어물 넘기고 있다. 그러면서 "나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공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하자는 데로 따라갈 수밖에 더 있느냐"고 사족을 단다. 한나라당 빅2 주자 중 이명박계가 몇 명이고, 박근혜계가 몇 명이고 하는 숫자놀이도 무의미하게 됐다. 또 지지후보를 달리 하는 지방의원들이 좌중에서 시끌벅적하게 하던 의견대립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최근의 달라진 모습이다. 4월 이전까지만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지지후보를 바꾸지 않는다"던 그 당당함이 사라졌다. 자연 자기주장도 무조건 밀어붙이려 하지 않고, 좌중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안다. 대통령선거와 차기 대권과 같은 이야기도 크게 줄어들었다. 신변잡기나 정치 외적인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선거가 1년 넘게 남아있을 때는 하지 말라고 해도 '악'을 쓰면서 하려던 정치 이야기를, 대선이 불과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를 거둬들이는 기묘한 현상이다.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잃은 이들과 함께 또 다른 한편에선 '무당파'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정당공천 후보보다 무소속이 전례 없이 초강세를 보였던 것과 무관치 않다. 지역성이 짙은 정당 공천만 따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던 불패신화가 이번 선거에서 무참하게 깨졌다. 한나라당이 재보선 패배이후 심각한 공천 후유증에 직면해 있는 것도 이 같은 오만에 있다. 서슬 퍼렇던 공천 칼자루의 위용이 무뎌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아무리 부당한 취급을 해도 공천만을 위해 꾹 눌러 참았던 정치 신인들 사이에 반란의 기운이 일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면 굳이 정당 공천에 목을 매지 않아도 당선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이번 재보선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 지금과 같이 정치를 보는 국민들의 눈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두려움이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의지가지없는 무당파가 쌍수를 들어 반기고 있다. 동네서 손가락질 받던 이가 어느 날 정당공천으로 지방의원 배지를 달던 호시절은 다 지났다. 정치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유권자가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차기 대선은 이 흐름을 누가 정확히 읽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4.25 재보선 결과가 좋은 약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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