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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1962년 최초의 공단으로 만들어지고, 선진기술을 익힌 엔지니어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덩달아 지역수준도 향상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기업이 적극적인 교류를 가져야 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기업은 친교를 갖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몰라도 높은 담을 쌓고만 있었다. 연고주의에 함몰된 소지역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린 셈이다. 울산사회는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극소수의 인사들과 특정 학교 출신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그들로서는 오랜 기간 지역사회를 주물러온 막강한 권한을 내놓고 싶지 않았을 터. 그 결과 울산은 시대상황에 맞게 성장하지 못하고 상당 기간 옛 모습을 유지했다. 구시가지인 중구지역과 신시가지인 남구 일부 지역의 모습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발전은커녕 도리어 후퇴함으로써 커다란 정신적, 물질적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학연주의의 폐해도 드러났다. '시 공무원 가운데 J중과 N고를 모두 나왔으면 성골이고, 한 곳만 나왔으면 진골'이라는 말이 시중에 나돌았다. 학연주의의 심각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었다. 그 학교를 나온 사람의 중용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학교 출신들이 울산사회의 주류로 행세해온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그 학교를 나온 것은 꽤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한다. 울산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의 거의가 그 학교 출신이고,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또 다른 학교를 주축으로 한 학연주의가 내비치고 있어 염려스럽다.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들리지만, 상징적인 사건의 내막이 시중에 나돌았다. '수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 행정기관의 인사팀장 자리를 놓고 신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H고와 U고 출신이 응모를 했다고 한다. 그들의 능력에다 동문들의 힘까지 가세되어 워낙 팽팽하자, 그들을 배제하고 제3자를 골랐다는 것.' 진위여부는 알 필요도 없지만, 젊은 세대들도 학연주의에 함몰되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지자제가 실시되면서 선거직에 특정 고교 출신들이 상당수 당선되면서부터 학연주의도 더욱 발을 뻗치고 있다고 한다. 젊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앞장서서 말이다. 민주화를 앞당기고 시민사회를 만든 30대에서 50대 초입의 젊은 세대의 강점은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점에 있다. 구세대의 상징인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점이다. 학연주의에 빠진다는 것은 구세대의 상징인 독선적이고 폐쇄적이 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젊은 세대가 결코 취할 바가 아니다. 권위주의 시절에 울산이 발전하지 못하고 후퇴한 사실에서도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그로 인해 울산이 입은 손실은 그 얼만가.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이 모두가 천박한 학연주의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학연주의에서 시급히 벗어나야만 한다. 울산 부흥의 출발이자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