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내분 사태가 끝장내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오죽하면 당을 쪼개고 제 갈 길을 가자는 주장이 당 안팎에서 서슴없이 터져 나오겠는가. 신중하고 참을성 많기로 정평이 난 박근혜 전 대표의 최근 어록이 이를 십분 대변하고 있다. "경기규칙을 걸레로 만들자는 것이냐", "이런 식으로 하면 한나라당은 원칙도 없고 경선도 없다"는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당내 대통령후보를 뽑는 경선방식을 두고 빅2 주자 간에 한 치 양보 없는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내놓은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이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다. 중재안이라는 것이 과거 자유당 정권 말기에 나온 사사오입보다 더 복잡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평등선거의 기본원칙에도 정면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당내 혁신위원장으로 현행 경선규칙을 만든 장본인인 홍준표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재안을 즉각 철회하고 현행 규칙을 지키던지, 아니면 제2의 중재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현재의 당 분란과 관련, "당 전체를 세탁기에 넣어서 한번 돌려야 한다"고 환골탈태를 주문했다. 무엇보다 현 중재안을 상정, 처리할 한나라당 전국위원회 김학원 의원이 "이대로는 상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 중재안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양쪽이 합의한 단일안을 만들어오거나 복수안을 갖고 와서 표결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합의하지 않는 한 상정할 수 없다"며 밝히고 있다. 국민의 심판을 받기에 앞서 당원 간 결속력을 강화하고 대국민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이벤트라 할 경선이 이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현재의 지지율에 너무 자만한 나머지 후보 확정이 곧 당선으로 보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다.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 4.25 재·보선에서 확인하고도 아직 꿈을 깨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이런 한나라당 내분과 아랑곳없이 정국은 급박하게 흐른다. 범여권이 구심점 없이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저들의 혼란은 질서 있는 통합으로 가는 장정이다. 특히 저들은 권력의 맛을 보았고, 정권을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현재 여권에서 가동되고 있는 정권재창출 플랜은 소름이 돋을 만큼 정교하다. 아니 갈수록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아!'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권말기에 40%대를 오르내리는 대통령 지지율이 그렇고, 남북과 주변 국제정세가 한나라당으로선 영 반갑지 않은 이변의 연속이다. 완고하기 짝이 없던 미국의 대외정책이 화해무드로 급속히 조정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변화도 연동하는 추세다. 언제까지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을 것 같던 북한에도 당과 국민들로부터 혁명에 가까운 개방물결이 일고 있다.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 실험을 강행했던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변화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에만 함몰돼 있던 북한의 기존 권력지형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고 할 정도다. 김대중 정권 당시 성사되었던 남북 정상회담도 언제 또 현실화될지 모른다.
 현재 범여권,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집권세력이 정권창출을 위한 시나리오로 잡고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한-EU FTA 타결, 대륙 횡단철도 연결 등도 지금 추세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성사될 경우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반통일 세력으로 낙인찍히게 될 수밖에 없다. 자연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0%를 훨씬 넘기면서 정치의 모든 의제를 독점하게 된다. 범여권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질서 있는 통합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록 통합방법론 등을 둘러싸고 저들끼리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처럼 죽기 살기가 아니다. 더욱이 저들은 물고 뜯을 살림도 없다. 선거에 후보마저 낼 수 없는 처지로 몰려 있지 않은가. 오직 사즉생의 각오로만 뭉쳐져 있다. 범여권의 최종 후보가 누구로 귀착될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저들의 생각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에게 "특정인을 후보로 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결국은 물줄기가 대하에서 만나지듯이 우리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국가와 대의는 안중에 없고 저들끼리 골육상쟁을 거듭하는 한, 국민들 역시 한나라당에게 여의도 권력이라면 모를까 큰 권력인 대권은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3만불 시대를 눈앞에 둔 국민의 안목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