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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말 선생님이 되기를 원했을까? '
 이렇게 의문 한번 가져보지 못한 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있는 교실 속에서 이 십여년간 긴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우리의 시간은 늘 삼월에 시작되었고 이월이면 끝을 내었다.
 삼월, 첫 수업을 시작하면 새싹이 눈뜨고 잎을 피우는 것을 돌보느라 곁을 돌아보지 못했다.
 우리의 친구는 옆 반 선생님이었고 우리의 스승은 교장, 교감, 여러 부장선생님들이었다.
 우리 학급의 아이들은 모두에게 공유되었다.
 누가 애를 먹이는지, 누가 더 착한지, 모두 다 아는 이야기를 우리끼리는 얼마나 맛난지 하루 종일 해도 끝이 나질 않았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 반 애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는 우리를 지켜보는 외부인들은 더러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니 초등학교 선생이야, 꼭 애같이 굴기는'
 그래도 우리들 왕국 속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게 진행되는 일 년짜리 연재소설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라고 영국의 서정시인 워즈워드는 말했던가?
 아이들의 놀이와 행동, 말 속에서 성장 배경을 느끼며 옳고 그름을 지엄하게 가르치던 그때 그 시절도 지나고, 이제는 너도 나도 하나 아니면 둘의 자식뿐이라- '바람 불면 넘어질세라,'사랑 듬뿍 고이고이 키운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게 연장되어 학교에서 까지 오직 내사랑 내자식의 맹목적인 요구에 선생님들의 마음과 행동은 자꾸 움추러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교사의 열정이 자칫 화를 만나 가슴에 멍울을 달면 햇병아리의 페스탈로치 같은 푸른 꿈도 접어 직장인으로 변질되어야만 하는 시대가 아닌가.
 '군사부일체'도 '군자의 즐거움'도 전설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학교란 울타리속에서 나와 너의 만남은 담임이라는 결정적인 '사이존재'를 만들어버리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래도 아이들은 오월이면 꽃처럼 피어났고 칠월이 되면 푸른 바다처럼 출렁거렸다.
 겨울방학이 오면 둥지를 떠나는 새들처럼 날아가 버렸지만 우리는 새 둥지를 다시 청소하며 새 아이들을 기다렸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선생님' 하고 부르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을 그들은 알까? 
 이 땅에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 우리들이 홀로 얼굴 붉히는 것을 그들은 알까? 서로가 불신하며 불신의 벽이 높게 쌓인지도 이미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선생님이라고 불려지기가 부담스럽고 두려워서 아예 스승의 날 조차 휴교로 명해 버린 이 시간의 어려움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이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로켓처럼 재빨리 스쳐지나가지만 우리는 추억이나 되씹는 고리타분한 사람들로 이해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모처럼 맞는 스승의 날, 붉은 카네이션 하나 가슴에 당당하게 달지 못하고 5월15일이 가까워 오면 언론매체는 부정적인 관점으로 조명 받아 모든 현장교사가 그 대로 매도 당해지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무겁다.
 힘들었지만, 학부모는 교사를 믿었고 또 교사는 우리가 교사여서 자랑스럽고 당당하던 시절에 우리는 우리가 이 시대의 희망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르친 수많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나가면 우리의 바램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현장에서 목이 쉬어도 회초리를 들어도 당당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수만 가지 중의 하나의 직업으로, 그 직업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업의 하나로 선호 받는 현실을 보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엘리트들이 교단으로 몰려오고 있다.
 그런 엘리트들에게 묻는다. '그대, 미래의 교사들이여, 그대는 이런 세파에 맞서 진정 이 시대 한 치의 부끄럼 없는 진정한 희망이 될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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