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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연극배우

 

  장윤환 작 <색시공>은 사이비 교주 밑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두 제자들이 사이비교주의 죽음을 놓고 그 후계를 서로 이어받으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연극. 초연된지 3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여전히 그 풍자의 맛은 살아있다.
 아무것도 아닌 허실의 권력 앞에서 의리도 맹세도 팽개쳐버리는 오늘날의 여러 사회문제를 비아냥거리듯 해학과 걸죽한 입담으로 두 남자가 펼치는 연기는 내내 그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등장인물은 황포와 갈포. 배우라면 한번쯤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이다. 사이비 교주가 승천하자 추종자 황포와 갈포는 이후의 미래에 대해 청사진을 그려본다.
 
 [황포] 이제는 으짜지? 무량도설을 온 천하에 펼쳐야 헐틴디.
 [갈포] 아 물론 온 천하에 전파혀야지. 이 자리에다 무량도설 총본사를 덩그렁허게 세우더라고! 무량도설 총본사를 짓게 되면 바로 이 자리에 법당을 세우고 사부님의 형상을 빚어 모시더라고.(중략)
또 저쪽에는 다보탑모양 법륜탑을 우뚝허게 세워놓고.
 [황포] 법당이고 법륜탑이고 간에 우선 신도들부터 모아야 되지 않겠는개비.
 [갈포] 고거야 이를 말인가? 아 신도없는 종교가 어디 있으며 우리가 무슨 푼전있어 절을 짓는당가? 신도들을 끌어모아 헌금을 받아내야지.
 
 그리곤 황당무개한 무량도설 추진을 꿈꾼다. 꿈을 현실인양 착각하고 공상이 깊어지던 그들은 결국 주도권을 다투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그 다투는 모습 또한 황당하고 우습다.
 
 [갈포] 무식허기는. 예수님 수제자 베드로 사도도 어부 출신이라는 걸 몰라?
 [황포] 누가 누구더러 무식허다는 거여? 그렇다면 석가세존을 수행허던 아라한 우팔리 존사는 생업이 뭣이당가? 이발사 출신이여, 이발사 출신!
 [갈포] 이발사도 이발사 나름이지. 우팔리 존사로 말허자면 석가세존을 수행헐 정도니 면허증도 없는 떠돌뱅이 이발사와 같을까?
 [황포] 얼씨구! 그말 한번 시원하다.
 
 그 갈등이 절정에 달할 즈음, 사이비 교주인 백포도인이 나타난다.
코미디의 마지막 반전을 보는듯한 백포도인의 대사는 황당한 상황에서 내뱉는 말이지만 그 속에 가시가 있다.
 
 [백포도] 황포야 갈포야, 나 죽는다. 어이고 나 죽어 내 제자들을 더는 속이기가 뭣혀서 승천허는 시늉을 허고 동굴속에 들어가 아무도 몰래 죽어버리면 살신성인도 쉬운일이 아니고만 식음을 전폐허고 굶어 죽는거야 이골이 나서 힘들지는 않을틴디. 아 살모사가 목줄기를 물고 늘어질 줄이야.(사방을 두리번 거리다가 법륜을 발견하고) 오냐 오냐 저게 바로 내 널짝이고나. 무시무종 무량도설 사바하! 사력을 다해 법륜까지 기어가서 가까스로 해치 속으로 들어간다) -막-
 
 '무시무종 무량도설'. 즉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량도설이라는 뜻. 우리는 때로 현실을 망각하고 황당한 꿈을 따라가고자 하기도 한다. 그것을 따르기 시작하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나락의 세계로 빠지고 만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불가의 깊은 가르침인 '색즉시공 공불이색'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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