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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책방이었던집 앞 지나다/점포임대라는 붉은 글씨를 본다(중략)/사라지는 것들은 다 그리운 것이어서/오랜 시간이 지나면/서점앞에서의이 오랜 서성임도 클릭해야만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기억의 이유>중에서)
 '사라진 것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표현이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최근 첫번째 시집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도서출판 고요아침)을 낸 울산 시인 이궁로(사진)씨의 얘기다.
 지난 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씨가 5년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은 시인 자신의 과거로 눈을 돌린다. 말하자면 이 시집은 시로 쓴 개인사이자 가족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첫시집 제목에 표현된 '삶의 안쪽'을 만지지 못하지만 기억하고 반추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이씨의 머리속에 저장돼 있는 생후 8개월부터 짙은 안개가 드리운 가족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이데올로기의 길로 불화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남편 얼굴 한번 보지못하고 결혼하고 언제나 만삭의 모습이던 어머니, 서울을 향한 꿈으로 지새던 고모 등의 모습은 물론 '아직 인화되지 않은 채 안개 뒤편에 서 있던' 작가의 생전 시기까지 맞닥뜨린다.
 "그대, 이 사진 앞에서 누구나 한 시절의 아픔은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마라. 서 있는 땅이 모두 가시였던 시절이 저 안에 있으니, 손에 들꽃 들었지만 늘 이마 찡그리고 서 있는 계집아이는 아직 인화되지 않은 채 안개 뒤편에 서 있다"(<가족사진>중에서)
 
 그의 시는 삶의 기억, 가난과 고통으로 상징되는 삶과 눅눅하게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슬픔들이 자주 시의 소재로 몸을 드러낸다. 관념적이거나 난해한 외투는 아예 걸치지도 않았고 시의 질감은 손끝으로 느껴질 듯 구체적이다.
 문학평론가 성기각씨는 "이로 시인의 시적 인식세계가 할머니 혹은 어머니쯤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족에서 출발한다"며 "삶이 지닌 구체적 현장에 바탕을 둔 그의 시적 서정은 뛰어나다"고 평하고 있다.
 60여편이 수록된 이 시집은 유년의 기억에서부터 현재의 삶에 이르기까지를 형상화한 시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아주 오래 된 이야기', '탱자나무 울타리에 대한 짧은 명상', '겨울 숲', '감자먹는 사람들' 등 4부로 구성됐다.
 이궁로 시인은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울산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지원작. 7천원.   김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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